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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웅진그룹과 코웨이…‘애증의 자회사’가 남긴 것

[FETV=이신형 기자]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재계에서 ‘세일즈맨 신화’로 불린다. 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은 한국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세계 판매왕에 오른 뒤 1980년 직원 7명과 자본금 7000만원으로 웅진씽크빅의 전신인 '헤임인터내셔널을' 세웠다. 이후 교육·출판 사업을 기반으로 웅진그룹을 키웠고 정수기 회사 코웨이를 통해 그룹을 재계 30위권까지 끌어올렸다.

 

그런 윤 회장에게도 유독 복잡한 감정을 남긴 회사가 있다. 바로 코웨이다. 코웨이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에게 단순한 계열사가 아니다. 웅진그룹 성장의 출발점이자 두 차례 위기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애증의 회사’다. 코웨이는 1989년 한국코웨이로 설립돼 이듬해 웅진코웨이로 사명을 바꾸고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웅진코웨이는 국내에선 비주류 사업이었던 정수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해 2001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도 잠시였다. 웅진그룹은 2013년 유동성 위기 속에서 코웨이(당시 웅진코웨이)를 국내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했다. 당시 웅진그룹은 극동건설 부실과 태양광 사업 투자 실패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했고 그룹 생존을 위해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가진 코웨이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윤 회장은 이후 다시 코웨이를 품으려 노력을 기울였다. 2018년 웅진그룹은 4000억원의 유상증자와 3000억원의 전환사채 등을 동원해 코웨이를 재인수하며 경영권 회복에 나섰으나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로 웅진그룹의 태양광 계열사 웅진에너지의 경영난이 심화됐고 재무 부담이 커지면서 결국 2019년 코웨이를 넷마블에 매각했다. 결과적으로 코웨이는 웅진그룹 역사에서 두 번 매각된 드문 사례의 계열사로 남았다.

 

코웨이는 웅진그룹 성장의 기반이었던 동시에 그룹의 재무 한계를 드러낸 상징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웅진그룹 관계자는 “윤석금 회장은 지금도 사내 소통 자리에서 코웨이 이야기를 종종 꺼낸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웅진그룹의 사업 구조는 여러 변화를 겪고 있다. 교육 중심이던 포트폴리오에 최근 상조 사업인 프리드라이프가 새 축으로 자리 잡았다. 프리드라이프 인수 이후 상조와 라이프 서비스가 그룹 실적을 견인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다만 코웨이라는 이름이 웅진그룹에 남긴 상징성은 여전히 크다. 웅진그룹의 과거 성장을 견인한 회사이자 앞으로의 전략을 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코웨이는 웅진그룹의 손을 떠났지만 그 기억만큼은 여전히 웅진이라는 이름과 함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