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국내 대형 은행들이 일제히 '기업금융 강화' 목표를 내건 가운데, 은행 간 '공급망금융 플랫폼' 경쟁에 속도가 붙고 있다.
저마다 관련 사업에 '최초' 수식어를 붙이며 중소기업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모습도 잦아졌다. 단순히 '대출'에만 신경쓰던 기존 모습에서 벗어나 기업 내부 업무에까지 파고들어 각종 서비스를 공급, 밀착된 파트너십을 통해 금융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공급망 플랫폼은 제품 생산, 유통, 최종 판매 단계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시스템화, 자동화 등을 구현한 체계적인 구매관리 시스템이다. 일종의 B2B(기업 간 거래) 채널로, 은행들은 소정의 비용을 받거나 아예 받지 않고 거래 기업들에 이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당장의 수익보다 기업들을 자신들이 제공하는 공급망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여 장기적인 거래처로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린 행보다.
한번 구축해 놓으면 산업·업종별로 변형과 활용이 어렵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자본과 네트워크, 시스템 기술을 가진 대형 은행들이 공급망 플랫폼을 통해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동시에 자사의 충성 고객으로도 삼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우리은행은 국내 대형 은행 중 가장 공급망 플랫폼 활성화에 공을들이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조병규 행장 취임 이후로 두드러진 모습이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신용보증기금과 손잡고 지난해 9월 출시한 공급망 플랫폼 '원(WON)비즈플라자'에서 신보의 신용평가 기술과 인공지능(AI)이 결합된 'BASA 경영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원비즈플라자 회원사에게 기존 전자계약 외에 데이터를 활용한 협력업체 리스크 관리 등도 서비스하며, 약 600억원 규모의 회원사 전용 대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조병규 행장은 이 협약식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는데,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 가운데 올해 들어 공급망 플랫폼 협약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 행장이 유일하다. 조 행장은 이날 자리에서 "원비즈플라자를 계속 고도화해 비대면 채널을 통한 금융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이달에는 더 공격적인 원비즈플라자 홍보를 개시, 회원사에게 리스크 분석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공기압 분야 전문기업인 한국SMC와 함께 '디지털 공급망금융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한국SMC가 약 70만개의 공기압·자동제어기기 품목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83개국을 대상으로 판매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업무협약은 '일대일 업무협약'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신한은행은 공급망 전체 과정에 디지털금융을 접목해 기업간 결제, 정산 등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돕고, 영업활동 필요 자금에 대해 대출 등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시스템을 Open API(응용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기반으로 구축해 시스템 내부 데이터를 쉽게 이용하고 자금의 흐름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 최초로 B2B 시장에서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로서 참여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특히 기업간 자금 결제·정산은 물론이고 자금 예치, 수수료 지급 대행, 결제자금 대출 등 자금흐름 과정에서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추가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신한은행은 공급망금융, PG, 간편결제 솔루션 등을 소개하기 위한 사이트의 문을 열었다.
하나은행은 글로벌 무역 거래 플랫폼 기업 이씨플라자와 공동으로 공급망 플랫폼을 구축했다. 수출입 기업이 신규 거래처를 발굴하고 제품을 홍보하는 거래 중개 기능과 수출입 전자 계약, 인보이스 발행, 무역금융 등 수출입 업무 전체 프로세스를 이 플랫폼 안에서 처리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씨플라자는 239개국 110만 회원사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글로벌 B2B 플랫폼 기업이다.
성영수 하나은행 CIB그룹장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B2B 플랫폼을 통해 수출입 판로를 개척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이번 글로벌 공급망 플랫폼 구축을 통해 외국환 전문은행으로서 수출입 기업에게 유용한 B2B 플랫폼 전용 무역금융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은행은 동대문 패션 공급망 데이터체인을 만들기로 해 중소상공인(SME) 중심의 공급망 플랫폼에 일찍이 관심을 드러냈다. 흩어져 있는 동대문 공급망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려는 첫 시도로, 당시 금융권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국민은행은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방식으로 스타트업들과 함께 동대문 시장의 의류 공장, 도·소매업자의 거래 데이터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공급망 데이터체인을 구축한다. 이를 통해 신용 데이터가 부족한 동대문 시장 소상공인이 이용할 수 있는 금융 상품·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