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나연지 기자] AI가 사람을 대신해 철강을 운반하고, 정밀 용접을 하며, 공장 안을 사람처럼 걸어다니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데이터 분석과 예측을 넘어서, 이제는 물리적 행동까지 수행하는 '몸을 가진 인공지능(피지컬 AI)'이 실제 산업 현장에 본격 투입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팩토리 고도화에 맞춰 협동로봇 기술을 내재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를 기반으로 이족보행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두산로보틱스까지 중대형 휴머노이드 사업에 뛰어들며, 제조업 전반에서 피지컬 AI는 재계의 핵심 의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AI 기반 스마트팩토리 전략의 핵심 축으로 설비형 로봇과 협동로봇을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2024년에는 국내 로봇 전문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35%까지 확대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앞서 2023년에도 14.99%의 지분을 확보한 바 있으며, 이번 추가 투자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포함한 차세대 협동로봇 개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포스코DX와 협업해 개발한 'AI 무인 크레인' 시스템 역시 대표적 사례다. 철강 제품의 무게, 형태, 위치, 기상 등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최적의 이송 경로를 판단하는 이 시스템은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 판단 기반의 물리작업 자동화'라는 점에서 피지컬 AI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현재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와 무선사업부 일부 공정에는 협동로봇 기반의 시범 라인이 적용돼 있다. AI가 공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로봇팔이 부품 이송, 검사, 배치를 자동 수행하는 구조다. 이는 무인 공장, 이른바 '다크팩토리' 구현의 전제 조건으로 평가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은 피지컬 AI 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기업 중 하나다. 2021년 약 1조원을 들여 미국의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데 이어, 이족보행 로봇 '아틀라스'와 사족보행 로봇 '스팟'의 기술 고도화에 집중해 왔다. 최근에는 유압식에서 전기모터 기반으로 전환된 아틀라스의 신형 모델이 공개되며, 공장 내 조립작업에 투입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진 엽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521/art_17477337406478_a3c4f1.jpg)
현대차는 오는 2025년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에 아틀라스를 시범 투입해 일부 조립 공정의 자동화율을 최대 4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계열사 현대로보틱스를 통해 AI 기반 협동로봇의 양산 공정 도입을 확산하고 있다. 울산·아산공장을 중심으로 용접, 도장, 조립 공정에 로봇팔이 단계적으로 배치되고 있으며, 향후 도심항공교통(UAM) 및 자율주행 물류로봇과의 연계도 추진된다.
두산로보틱스(이하 두산)는 기존 협동로봇 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중대형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정밀 검사, 조립, 서빙, 이송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7종의 협동로봇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두산은 2023년 IPO를 통해 약 4500억원을 조달한 이후 본격적인 기술 투자에 돌입했다.
두산은 2025년 하반기까지 중형 휴머노이드 프로토타입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물류창고, 제조현장, 헬스케어 시설 등에서의 실증 테스트를 병행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는 'K-휴머노이드 얼라이언스'에도 참여하며 정부 및 산업계와의 협업을 통해 기술 내재화와 생태계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지컬 AI를 단순한 자동화 기술로 보지 않는다. 기존 산업용 로봇이 울타리 안에서 정해진 동작만 반복했다면 피지컬 AI는 판단→실행→피드백이 가능한 '움직이는 지능'으로 산업 구조 자체를 리디자인하는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피지컬 AI는 고령화, 인력 부족, 산업재해 감소, ESG 경영 등 제조업 전반의 핵심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로봇 자동화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만 고가 장비 도입, 데이터 학습 기반 구축, 안전 인증, 윤리 기준 정립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중소 제조업으로의 확산을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 및 인프라 조성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은 AI 크레인부터 협동로봇까지, 현대차는 걷는 로봇부터 AI 조립팔까지, 두산은 사람과 협업하는 휴머노이드까지 전략은 다르지만, '피지컬 AI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향후 제조 경쟁력을 좌우할 열쇠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