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엔화 가치 하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서 엔·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150엔을 연일 넘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1일 일본 도쿄 시내의 환율 전광판에 150엔을 넘어선 엔·달러 환율이 표시된 모습. [AFP 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21042/art_16665229272829_02f641.jpg)
[FETV=권지현 기자] 국내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드리우고 있다.
아시아 기축 통화로 꼽히는 엔화마저 심리적 저항선인 '1달러=150엔'을 위협받으면서 미국발 긴축으로 위축된 국내 시장이 더 경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이 엔저 영향권에 있는 만큼 엔화 초약세는 국내 금융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달 장중 1440원을 넘어선 원·달러 환율이 연말 1500원 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40엔 후반~150엔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21일(일본시간) 밤에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51엔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자산 가격 거품 경제 붕괴로 160엔 수준까지 밀렸던 1990년 8월 이후 32년 2개월 만에 150엔선을 돌파한 것이다.
위기를 느낀 일본 정부는 일단 개입에 나섰다. 지난 22일 오전 0시께 일본은행(BOJ)이 엔 매수, 달러 매도의 외환 개입을 단행한 결과 엔·달러 환율은 144엔대 중반까지 7엔가량 떨어졌다. 하지만 앞선 전례를 감안하면 BOJ의 이번 외환시장 개입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지난달 말 일본 정부는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5엔을 넘어서자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환율 개입을 단행, 146엔을 넘보던 엔·달러를 142엔 수준으로 급락시킨 바 있다. 그러나 효과가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최근 '150엔 시대'를 맞게 됐다.

다만 엔저 현상이 한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이전처럼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엔화 가치 절하는 시장에서 일본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여겨져 한국 수출에 악재로 인식됐다. 하지만 원화 가치가 1달러당 1430원대로 크게 하락한 데다 한국 수출상품의 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엔저의 영향이 작아졌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엔화 약세가 한국 원화 가치를 떨어뜨려 원·달러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데 있다. 엔화 약세는 달러 강세를 불러와 그렇지 않아도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떨어진 달러당 원화 가치를 더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BOJ는 '잃어버린 30년'을 찾고자 경제 활성화에 힘을 실으려는 일본 정부와 합을 맞춰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9월 일본의 핵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3.0% 올라 1991년 9월 이후 31년 만에 가장 높이 뛰었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의 대명사였던 일본이 역대급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도 여전히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완화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BOJ의 이 같은 태도가 엔저 현상을 지속하게 하고, 이는 달러 강세로 이어져 원·달러 환율마저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6.5원 오른 1439.8원에 거래를 마쳤다. [사진 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21042/art_16665281060622_cce975.jpg)
엔화가 글로벌 시장은 물론 아시아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엔저 현상은 아시아 지역의 무역과 투자의 통화 흐름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엔화는 달러화, 유로화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래량이 많은 통화다. 뉴욕 연방은행이 경기 경착륙 확률을 80%로 제시하면서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위축된 점도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약세를 부추길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달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아시아 통화들은 올해 들어 달러에 대해 큰 폭 약세를 보이고 있고,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하락했다"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통화로 한국의 원화를 꼽았다.
전문가들은 엔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이 지금의 통화정책을 고수하는 한 미국과의 금리 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어 엔화 가치는 추가적인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글로벌 시장은 미 중앙은행이 연말까지 최대 1.25%포인트 금리를 더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기가 아직 5개월 이상 남은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최근 엔·달러 환율 급등에 "안정적인 엔저 움직임은 경제 전체에 플러스"라고 언급, 엔저를 통한 경기 부양을 지속할 뜻을 내비쳤다. 말레이시아 CIMB은행의 송센운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통화정책은 완전히 꼬였지만 일본은행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