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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한화 70년] "세계로 미래로"...김승연 회장 '글로벌 한화' 성공신화

김승연 회장, 1ㆍ2차 석유파동, IMF사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승부사 기질, 결단력 발휘"

 

[FETV=박제성 기자] 한화그룹을 40년간 이끌어온 김승연 회장은 타고난 승부사다. 김 회장은 한화그룹 70년 굴곡의 역사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킨 주역이다. 김 회장은 1ㆍ2차 석유파동, IMF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우리나라 경제를 한 순간에 흔들어놨던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남다른 승부수 기질과 결단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한화그룹 70년 '신화창조'의 역사를 썼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김 회장을 일컬어 '미다스의 손'이라고 부른다. 

 

◆ 한양화학 및 한국다우케미칼(現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및 첨단소재 부문) 인수 =한화그룹은 창업주인 현암 고 김종희 회장 타계 후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부친인 김종희 회장의 타계로 갑작스럽게 경영권을 이어 받은 김 회장은 곧바로 위기극복을 위해 팔소매를 걷고 나섰다. 김 회장은 사업다각화와 성장 위주의 기업경영을 통해 그룹을 성장시키는데 총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는 제2차 석유 파동이 밀어 닥쳐 석유화학 경기가 크게 위축, 일본의 석유화학사업은 이미 사양길에 들어섰다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다.

 

당시 김 회장은 75억원과 430억원의 적자를 기록중인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 검토를 긴급 지시했다. 이 때부터 김 회장의 남다른 승부사 기질이 경영활동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물론 긍정적 성과가 나타났다.  당시 한화그룹내 경영진들은 두 회사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석유화학의 장래가 어둡지 않은데다 경제경기도 회복될 것이란 판단아래 인수 작업을 독려했다. 김 회장 취임 이듬해인 1982년 한양화학 인수를 마무리했다.

 

한양화학 인수 이후 석유화학 경기는 김 회장의 예측대로 빠르게 회복됐고, 한양화학은 인수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한화그룹은 경인에너지와 한양화학을 양 축으로 삼아 석유화학산업의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 현재도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한화그룹의 주력기업이자 대한민국 수출 효자 산업인 석유화학분야 선봉장이다.

 

◆ IMF 외환위기 극복과 새로운 도전 = 한화그룹에게 1990년대 후반은 시련과 동시에 기회의 시기였다. 1997년 11월 발생한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린 상황 속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은 것은 재계였다. 한화그룹 역시 위기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했다.

 

IMF 관리체제를 40여일 앞둔 시점에서 한화그룹은 구조조정을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주력사업인 기계 및 에너지 부문을 매각하는 등 뼈아픈 구조조정을 단행, 각 사업분야의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특히1998년 2월 한화에너지의 부도 위기 당시 긴급 자금 지원을 위해 김 회장은 계열사 주식과 금융자산, 부동산 등 사재를 담보로 제공하고 경영권 포기각서까지 제출해야 했다.

 

혹독한 구조 조정에 돌입한 지 1년 뒤 한화그룹은 가장 모범적이고 선도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기업으로 주목 받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모범기업인들을 격려하고자 청와대가 마련한 자리에 초청 받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한 격려를 받았다.

 

빠른 시간내 한화그룹이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김 회장이 모든 구조조정을 3가지 원칙에 입각해 단행했기 때문이다. 첫째 구조조정 회사의 구성원에 대한 고용승계와 신분보장을 약속했다. 둘째로 한화와 인수기업과의‘윈윈전략을 구사했다. 또 셋째로는 대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업구조조정을 통한 핵심사업 중심의 새 사업구조 강화를 토대로 제1기 구조조정(1996~1999년)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화그룹은 2000년 도약기에 이르러 제2기 구조조정과 함께 2002년에는 대한생명을 인수함으로써 그룹의 규모와 구조를 한 단계 높였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해 매출은 19조7000억원, 자산규모는 37조원을 넘어섰다.

 

외환위기와 1, 2기 구조조정을 거치며 경쟁력을 회복한 한화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 입찰에 참여, 6조3000억원의 금액을 제시하며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당시 세계경제를 다시 한번 침체의 늪에 빠지게 만든 금융위기가 닥쳤다. 한화그룹은 결국 자금조달 어려움과 조선업 업황 악화 등을 이유로 최종 계약을 포기했다. 한화그룹은 엎친 데 덮쳐 인수 무산에 따른 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산업은행에 몰수 당했으나 9년여 동안의 법적 공방 끝에 1951억원을 돌려 받았다.

 

한화그룹은 2008년 불어 닥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중국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수출전략을 추진하면서 길지 않은 기간에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2020년말 한화그룹은 83개의 계열사를 비롯해 469개의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 미국의 저명한 포춘이 선정한 ‘세계 글로벌 500대 기업’중 277위에 랭크됐다. 자산총액 기준 국내 7위 대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김 회장은 “(2006년 창립기념식) 글로벌 시대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워야 한다”며 ‘글로벌 경영’을 강조했다. 이듬해 1월 김 회장은 태국 방콕에서 열린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해외사업 추진 6대 실행 과제를 수립하는 등 주요 계열사의 글로벌 사업 확대를 독려했다.

 

6대 실행과제를 기반으로 선진시장 외 아시아 및 유럽지역의 주요 신흥시장을 동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동남아 등 4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효과적인 사업진출 방안을 분석했다. 김 회장은 특히 그린 에너지가 미래 산업혁명을 이끌 주역이라 판단해 그룹을 글로벌 녹색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태양광 사업에 주목했고, 향후 미래를 이끌어나갈 신성장 동력으로 지정했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태양광사업의 수직계열화와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방안으로 독일 태양광 기업 ‘큐셀’ 인수를 결정했다. 2014년 이후 태양광시장이 본격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바탕에 있었다. 김 회장의 예상대로 파산상태로 인수한 큐셀은 인수 1년 여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경영효율화와 함께 한국적인 조직문화를 접목해 이룩한 성과로, 우리 기업의 성공적인 해외경영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김 회장 취임 후 40년 동안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결과 1981년 7개에 불과했던 해외거점은 현재 469개로 증가했고, 미미했던 해외 매출은 2020년 기준 16.7조원(그룹 전체 매출의 25%)까지 확대되어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 민간외교관 김승연 = 김 회장은 탄탄한 해외 인적 네트워크와 뛰어난 리더십, 그리고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재계가 알아주는 미국통으로 유엔 한국협회의 첫 민간인 회장직을 역임했다. 세계 각국의 대통령 및 정치, 경제, 스포츠, 학계 지도자들과 폭넓은 우호 관계를 다져 한때 그 활동 폭이 ‘작은 나라의 대통령보다 넓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활발한 민간 외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회장은 미국 내 인맥을 자랑하는 기업인으로 선친 때부터 미국 내 정계 인사들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01년에는 민간 사절로 조지 부시 前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 2003년 美 대통령 국정연설 발표장에 참석하는 등 부시家와의 교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에는 빌 클린턴 前 미국 대통령을 한국으로 초대한 데 이어 중국 베이징 한화생명 개소식에 연사로 초대하는 한편 2009년 자서전 홍보 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다시 만나는 등 우의를 다졌다.

 

김 회장은 2000년 6월 한미간의 협력관계가 민간 채널로 공식 확대되는 의미 속에 출범한 한미교류협회의 초대의장으로 추대되어 한반도 평화 및 차세대의 한미관계 증진을 위한 민간사절로 자리 매김했다. 김 회장은 특히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에드윈 퓰너 회장과 40년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까지 국내외 정치∙경제∙외교 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전달하는 등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헤리티지 재단은 지난 2011년 미국 워싱턴 펜실베니아가에 위치한 헤리티지 의회빌딩 2층 컨퍼런스센터를 ‘김승연 컨퍼런스센터’로 명명할 정도로 한미 민간외교에 기여한 김 회장의 공로를 인정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 인맥으로는 딕 체니 전 부통령,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에니 팔레오마베에가 전 하원의원,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빅터 차 박사 등이 있다. 김 회장은 선대 회장에 이어 1984년부터 주한 그리스 명예총영사를 맡아 오면서 한국과 그리스 간의 경제 및 문화 교류에 크게 공헌했다. 

 

김 회장은 2007년 그리스에서 큰 산불로 인해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거액의 성금을 그리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 같은 사실이 그리스 언론에 대서 특필돼 한국의 각종 국제대회 유치에서 그리스의 지지를 받는 데 일조했다. 김 회장은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리스 정부로부터 그리스 명예 대훈장과 그리스의 최고 훈장인 휘닉스 대훈장을 수훈했다.

 

김 회장은 2011년 일본이 대지진으로 어려움을 겪자 전력망이 파괴된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등지의 8개 초등학교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지원한 것을 비롯해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컵라면과 건축 자재 등 10억원 상당의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 이에 하토야마 前 총리는 감사의 뜻을 담은 편지를 전해 화제가 됐다. 이후 하토야마 前 총리와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2011년 11월 프랑스를 방문해 G20 비즈니스 서밋에 참가한 김 회장은 민간외교 및 글로벌 경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녹색성장 분과’에 참석해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를 통해 후손들에게 친환경 미래를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G20정상과 세계 유수의 기업CEO들에게 녹색성장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당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파리 엘리제궁에서 주최한 ‘사르코지 대통령 주재회의’에 한국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초대되면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