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현호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한 지 1년이 된다. 삼성 측은 별도로 준비한 추도 행사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은 경기 수원시 선영에서 조촐하게 추도식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추도식은 코로나19 방역 지침상 사적 모임으로 분류돼 최대 8명만 참석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승어부(勝於父)를 언급하며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효도’라고 밝힌 바 있다. 관련 재판으로 구속수감 되며 경영 행보에 제약이 걸렸지만 11월에는 미국 출장길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파운드리(위탁생산) 생태계 확장을 위한 행보로 승어부의 뜻을 이룰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정농단 재판은 끝났고 프로포폴 불법투약 혐의도 이달 마무리돼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 부담은 크게 덜어낼 전망이다. 하지만 페이퍼컴퍼니 설립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이 이를 수사하기로 계획한 상태다. 수사에 따라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또 다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사진=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11043/art_16351200524577_14b231.jpg)
◆이재용, 제2 파운드리 공장 확정 지을까=가석방 이후 취업제한 규정으로 경영 행보에 제약이 걸렸던 이재용 부회장이 다음 달 미국 출장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내 제2 파운드리 공장 건립을 위한 부지 점검 차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진행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신규 파운드리 공장 구축에 미국에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파운드리 공장 건립을 위한 여러 후보지 가운데 가장 유력한 곳은 텍사스주의 테일러시로 평가된다. 테일러시는 삼성전자의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60㎞)에 위치에 있고 최근 의회가 용수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부여하는 결의안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결의안에는 공장 건립을 위한 토지에 재산세의 92.5%, 이후 10년간 90% 등 보조금을 제공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부회장은 현재 가석방 신분이지만 해외 출장에는 법적 제약이 없다.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상 5년간의 취업을 제한 받았지만 그동안 무보수로 일했고 회사에서도 공식적인 직함이 없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 2014년,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후 ‘무보수 재직’을 이유로 경영활동을 이어온 바 있다. 가석방을 승인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올해 8월, “이 부회장은 무보수에 미등기임원”이라며 “주식회사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데 이 부회장은 참여할 수 없어 취업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파운드리 성장이 중요해진 이유=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서둘러야 하는 입장이 됐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에도 파운드리 업계는 공장을 풀가동 중인데 반도체 수요가 급격하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반도체 매출에 70% 이상을 책임지는 메모리 시장의 침체가 예고되면서 성장동력을 빠르게 끌어올릴 필요성이 높아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4분기 낸드 플래시 가격은 전분기 대비 0~5% 하락하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평균 18% 이상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내년 낸드 매출은 전년 대비 7%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했는데 올해 성장률을 21.9%로 예측한 점을 고려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앞서 트렌드포스는 4분기 D램 가격도 3분기 대비 평균 3~8%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메모리 시장 전체가 위축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스마트폰, 노트북, 서버 등의 출하량은 견조하지만 내년에는 늘어나기 쉽지 않다”며 “고객사의 재고가 증가하면서 향후 공급은 제한적일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마트폰 시장은 부품 수급에서 차질이 발생하고 있고 노트북은 재택근무가 줄어들어 수요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파운드리 시장은 전통 고객을 넘어 수요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파운드리는 막대한 투자금액이 필요하고 공정 난이도를 끌어올리기 어려워 진입장벽인 높은 산업이다.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주문하려는 고객사가 늘어날수록 삼성전자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애플을 비롯해 구글,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테크 기업이 앞다퉈 자체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는 만큼 파운드리의 성장 가능성이 가파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애플은 PC용 CPU(중앙처리장치)인 ‘M1’을 출시한 데 이어 최근에는 M1 프로와 M1 맥스를 통해 기술력을 한 층 더 끌어올렸다. 애플에 따르면 M1 프로는 M1 대비 최대 70% 빨라진 CPU 속도를 자랑하며 M1 맥스는 M1보다 그래픽 성능이 4배 빠르다. 반도체의 성능은 나노(nm) 기술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숫자가 낮을수록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M1 프로와 맥스는 모두 5나노 공정을 통해 생산됐으며 현재 5나노 이하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은 TSMC와 삼성 뿐이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만큼 삼성 파운드리가 애플 반도체를 생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MS가 서버 컴퓨터·PC용 반도체를 자체 개발하기로 했고 구글과 테슬라도 각각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와 AI(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모두 반도체 생산능력이 없는 만큼 삼성전자의 잠재적 고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퀄컴과 엔비디아, IBM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박유악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파운드리 시장은 지난해 775억 달러에서 2023년에는 975억 달러로 크게 성장할 전망”이라며 “5G 네트워크와 스마트폰의 시장 확대 등이 수요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고 7nm 및 5nm 공정 도입과 공급 부족으로 서비스 단가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파운드리 신규 고객사 매출액이 대거 반영될 것으로 보이는 2022년에는 비메모리 부문의 영업이익이 올해 1조3000억원에서 2조8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11043/art_16351200519302_1a669b.jpg)
◆끊이지 않는 사법리스크...이번엔 ‘페이퍼컴퍼니’?=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와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은 이달 프로포폴 관련 1심 선고를 26일 앞두고 있다. 지난 12일 공판에서 검찰은 이 부회장에 벌금 7000만원과 추징금 1702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 부회장 측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만큼 벌금형 선고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달 선고로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가 한층 가벼워질 전망이지만 해외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한 매체는 “이 부회장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은 범죄수익환수부에 사건을 배당한 상태다. 수사에 따라 또 다시 재판을 받게될 처지에 몰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