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이가람 기자]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하면서 신용공여 한도가 바닥난 증권사들이 대출을 중단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이 증권사들의 대출 재개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의 신용 융자 잔액은 25조원에 달한다. 지난 18일 사상 최고치인 25조6112억원을 돌파한 뒤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25조원대를 유지 중이다. 올해 상반기 신용거래융자 하루 평균 잔고도 22조236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9조7204억원)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그러자 증권사들은 대출 서비스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신용공여 한도 소진을 이유로 들었다. 신용공여는 증권을 담보로 현금을 빌려주는 증권담보대출과 증권사가 투자자 대신 주식을 매입해 주는 신용융자가 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신용공여 한도는 자기자본의 20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은 주식, 펀드, 채권,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대한 예탁증권담보 신규 대출을 일시적으로 막았다. KB증권은 이미 지난해 12월 초부터 증권담보대출 서비스 중지에 들어간 바 있다.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대신증권은 아직 대출 창구가 열려 있지만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라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증권사들은 융자 기간이 7일 이내일 때 3.9∼7.5%의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다. 융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금리가 높아지는 구조라, 180일을 초과할 시 이자율은 5.8∼9.9%까지 오른다.
한은은 지난 26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기준금리를 기존의 0.5%에서 0.75%로 0.25%포인트(p) 인상했다. 주요 증권사들이 금리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0.77%에서 0.92%로 0.15%p 상승했다. 증권사들은 통상 CD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으로 대출 이자를 책정한다.
실제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상향한 다음 날인 지난 27일 코스피 시장의 일일거래량은 5억2067만주로 파악됐다. 지난해 10월 29일(5억977만주) 이후 가장 적었다. 올 들어 지난 5월을 제외하고 매달 12억∼16억주 사이를 넘나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가량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미국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이 보유주식을 담보로 한 주식 매매 규모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금융산업규제국(FINRA)은 지난 7월 미국 투자자들의 주식담보차입 규모가 전월과 비교해 약 4% 축소된 844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3월 이후 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도 최근 몇 주간 헤지펀드의 순차입액을 줄여나가고 있다. 조기 테이퍼링 가능성에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빚투를 확실히 제어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면서도 “한은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몇 차례 더 단행할 경우에는 증권사들도 결국 신용융자 금리를 높이게 돼 대출 규모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신용융자 금리 변경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시중금리가 등락하더라도 이를 곧바로 반영하기보다는 가산금리를 조정해 고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한은이 연내에 한 번 더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경우 증권사들도 신용융자 이자율을 올릴 수밖에 없어, 투자자들이 대출을 받지 않거나 상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중장기적으로 증권사들의 수익 구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올 상반기 증권사들이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거래융자를 통해 얻은 이자수익은 전년 동기(3640억원) 대비 200% 이상 치솟은 총 8524억원으로 집계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