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01044/art_16037788568777_df22db.jpg)
[FETV=김창수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하면서 삼성그룹에 남겨진 ‘숙제’에도 관심이 쏠린다. 풀어야 할 과제는 크게 서너 가지로 압축된다. 이건희 회장의 유산에 매겨지는 상속세 관련 이슈, 재산 분배와 이 회장 세 자녀 계열사 간의 계열분리, 소위 ‘삼성생명 법’과 엮인 지배 구조 등이다.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맞아 삼성과 그 오너가에 남겨진 풀어야 할 실타래들을 차근차근 짚어 봤다.
◆‘상속 주식 18조원’…10조원 추정되는 상속세 둘러싼 복잡한 셈법=이 회장이 보유한 재산은 주식 기준으로만 18조원이 넘는다. 이 주식은 이재용 부회장 등 직계 가족에게 상속될 예정으로 이에 따라 이 부회장 등이 부담해야 하는 상속세만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의 주식보유액은 23일 종가 기준 총 18조2251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기준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900주(0.08%) ▲삼성SDS 9701주(0.01%) ▲삼성물산 542만5733주(2.88%) ▲삼성생명 4151만9180주(20.76%) 등을 보유했다. 실제 상속 시 평가액은 사망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의 종가 평균을 기준으로 산출되므로 향후 2개월의 주가 변동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이 회장의 직계가족들이 10조원대의 상속세를 지분 매각 없이 지불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의 주요 상속 자산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주식이며 자녀들이 보유한 주요 자산은 삼성물산과 삼성SDS 주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의 매각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면 삼성생명과 삼성SDS 지분 전부를 매각해도 증여세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결과적으로 이재용 부회장 등이 증여세 납부 이후에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배당이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한편 부족한 금액은 대출과 계열사들의 배당 확대를 통해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연부연납이란 상속세의 6분의 1을 지불한 뒤 나머지 금액을 5년에 걸쳐 분납하는 납부 방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상속 재산에 대한 상속세 9215억원을 연부연납 방식으로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사진=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01044/art_16037789111226_eac37b.jpg)
◆이재용 3남매, 상속 재산 분배와 계열 분리 어떻게=이 회장의 법정상속인으로는 홍라희 전 삼성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있다. 법정상속비율대로라면 배우자인 홍 전 관장이 이 회장 지분의 33.33%를 받고 이 부회장 등 3남매가 각각 22.22%씩을 받는다.
이대로라면 홍 전 관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기존 0.9%에서 2.3%로 늘어나 개인 최대주주가 된다. 삼성생명 지분 역시 6.9%를 새로 확보, 역시 개인 최대주주가 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홍 전 관장보다 적은 삼성전자 지분 1.6%, 삼성생명 지분 4.7%를 보유한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삼성전자 0.9%, 삼성생명 4.6%를 지니게 된다.
변수도 있다. 법정상속비율을 따르지 않고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상속을 진행하도록 유언장이 작성됐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지배구조의 정점으로 삼아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했으므로 후계자인 이 부회장이 이 회장 보유 지분의 상당부분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의 상속인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보유 중인 현금이나 지분 등을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3세’들의 계열사 경영 향방 또한 관심거리다.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력 계열사를 이끌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일부 계열사를 분리 경영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력 계열사를 맡기고 장남인 고 이맹희 명예회장에게 CJ그룹을, 오녀인 이명희 회장에겐 신세계그룹 등 계열사를 넘겨줬다.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선대 때처럼 이들에게 일부 계열사를 분리 상속했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경우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전자 등 지배구조 유지에 필요한 계열사를 몰아주고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를, 이서현 이사장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각각 맡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론 코로나19 사태로 호텔·면세 및 패션 업계가 타격이 큰 상황에서 무리하게 분리 경영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당장 삼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보단 경영 안정화와 브랜드 가치 제고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2010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CES2010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사진=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01044/art_1603778937931_52524f.png)
◆‘삼성생명법’, 그룹 지배구조 발목 잡을까=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험사의 계열사 보유 지분을 취득 당시 가격이 아닌 현재의 시가로 평가하도록 하는 일명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과 채권의 가치를 취득할 당시의 원가에서 현재 기준 시가로 적용해 총자산의 3% 이내로 보유하게 하자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삼성생명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삼성생명은 총자산의 3% 이내로만 대주주나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도록 하는 ‘3% 룰’에 걸리게 된다.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의 상당 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보험업법에는 보험사의 계열사 지분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로 규제하지만 현행 법 조문에는 총자산과 지분 보유액 평가 방식이 명시돼 있지 않다. 다만 보험업감독규정에서는 총자산과 자기자본은 시가를, 주식과 채권 보유 금액은 취득 당시 원가를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현재 규정에 따라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전자 주식을 1980년 이전 취득 당시 가격으로 계산해 보유하고 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6월말 기준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5억815만주)은 8.51%다. 이를 취득 당시(1980년) 가격 기준으로 계산하면 5440억원 규모다. 삼성생명의 총자산이 317조8255억원임을 감안하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총자산의 0.15% 수준이므로 현재는 3% 룰을 지키는 셈이 된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현재 계류 중인 ‘삼성생명법’에 따라 시가로 평가하면 28조3551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는 삼성생명 총자산의 약 9%에 해당, 보험업법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3%룰에 걸린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은 2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 [사진=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01044/art_16037789586216_23ec14.jpg)
◆TSMC 추격 갈 길 바쁜데…발목 잡는 국정농단 재판= 한편 오랜 기간 ‘메모리 최강자’ 자리를 지켜온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고민이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D램 부문 29년 연속, 낸드플래시 부문 18년 연속,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부문 14년 연속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런 삼성도 비(非) 메모리 분야에서는 2인자다. 모리스 창 전 회장이 설립한 대만의 TSMC가 1위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모리스 창은 지난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와는 격차는 오히려 더 커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 53.9%, 삼성전자 17.4%로 추산됐다. 2분기 32.5%포인트였던 점유율 격차는 3분기 36.5%포인트로 벌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이어 ‘초격차’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은 초격차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세계 1위인 메모리 분야에서는 극자외선 기반의 최첨단 제품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상대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낮은 시스템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과감한 투자로 경쟁사인 인텔과 TSMC를 따라 잡겠다는 계획이다.
경영 일선의 산적한 과제를 풀어가야 할 이 부회장은 3년째 ‘사법 리스크’에 매여 있기도 하다. 이 부회장은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과 함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돼 풀려났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 측이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서원 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34억 원)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16억 원)을 모두 뇌물로 인정해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총 뇌물 공여액은 86억 원으로 늘어났고 해당 자금의 출처가 회삿돈이라는 점에서 횡령액도 86억 원이 됐다.
이 사건은 검찰 수사가 1년 9개월간 이뤄진 만큼 기록도 방대하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지난 22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기록 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걸려 다음 재판까지 최소 3개월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른 변호인들도 “하루에 기록을 1000페이지씩 봐도 200일”이라며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2021년 1월 14일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공소사실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 측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이후엔 정식 공판이 시작돼 재판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검찰이 사회적·경제적 파장이 큰 사건이므로 신속하고 집중적인 심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만큼 이 부회장은 일주일에 1회 이상 법정에 나와야 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재판은 재계 1위 삼성의 ‘경영권 승계 불법 여부’를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재판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불법 행위가 드러날 수도 있는 만큼 한국의 경영 환경과 자본시장, 국내외 기업인·투자자들의 시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