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이가람 기자] 최근 미국 3위 은행인 씨티그룹이 월가 대형은행 중에서 처음으로 여성을 최고경영자(CEO)로 발탁했다. 월가에서 마침내 '유리천장'이 깨진 것이다. 이에 국내 금융권 최초의 여성 CEO가 재조명되고 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보험업계의 첫 여성 CEO는 손병옥 전 푸르덴셜생명 회장이다. 손 전 회장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체이스맨하튼과 크라커내셔널 등 외국계 은행에서 일했다. 그러다 1996년 푸르덴셜생명으로 영입됐다. 이후 인사, 홍보, 재무, 상품개발, 자산운용 등 경영 전반을 책임지며 입사 1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여성 CEO는 시기상조라는 성별논란을 업무 능력과 다정한 리더십으로 돌파하고 2011년 푸르덴셜생명 대표이사로 낙점돼 2015년까지 근무했다.
최초의 여성 CEO인만큼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등 진로설계와 경력개발을 고민하는 여성들을 위한 멘토링 사업에 꾸준히 참여했다. 또 저소득층과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할 정도로 여성의 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푸르덴셜생명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현재 KB금융그룹 사외이사로 활동 중인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도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7년 중소기업은행에 행원으로 입사한 권 전 행장은 지점장,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 리스크관리본부장을 차례로 거쳤다. 남성 동료들과 경쟁하기 위해 출근 시간을 앞당기고, 금융연수원에서 진행한 교육과정들을 수료하는 등 열정과 뚝심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아이 출산 전날까지 근무하고, 한 달 만에 복직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2013년 기업은행 은행장이 된 권 전 행장은 당시 은행가에서 최초로 배출한 여성 CEO로 주목을 받았다. 기업은행은 권 행장 체제 하에 1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올리고, 중소기업대출은 7조원 규모의 순증을 기록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달성하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증권사 최초의 여성 CEO인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도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다. 여성 CEO라는 고정관념과 한계를 깨겠다는 언급을 자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왔다. 체이스맨해튼, 조흥은행, 삼성화재, 국민은행 등에서 업력을 쌓은 자산관리(WM) 전문가다. 국민은행 WM그룹 부행장, KB금융지주 WM총괄 부사장, KB증권 WM부문 부사장 등 계열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기도 했다.
박 대표는 화통한 성격과 사교성을 기반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권위를 버리고 상황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이를 통해 KB증권은 지난해 29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전년 대비 50%가 훌쩍 넘는 성장률이다. 박 대표의 전문 분야인 WM 사업부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달 기준 KB증권의 고객 금융 상품의 잔고는 31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카드사, 자산운용사 등에서는 아직 여성 CEO가 등장하지 않았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관계자는 “금융업계의 '유리천장'은 아직 굳건하다”며 “남성들이 조성한 보수적 직장 문화 속에서 성차별, 임금차별, 승진차별 등 다양한 좌절을 겪은 능력 있는 여성들이 고위직으로의 승진을 지레 포기해 버리고 만다. 유리천장을 깨는 여성 롤모델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여성 CEO들의 활약을 통해 다음에 등장하게 될 여성 CEO는 더 빠르게,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