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박원일 기자] 현대건설의 지난해 수주 실적은 단순한 규모 확대를 넘어 ’사업 방향 전환‘을 분명히 드러낸다. 사상 최대 수주 실적을 기록했지만 성과의 핵심은 해외·에너지 부문으로 이동한 수주 무게중심에 있다.
원전·재생에너지·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사업이 전면에 나섰고 국내 정비사업은 안정적 기반 역할로 재정렬됐다. 수주 구성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현대건설은 2025년 연간 수주액으로 25조5151억원(추정치)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9% 증가한 수치이자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연간 수주 25조원을 넘어선 사례다. 그러나 이번 실적의 의미는 ‘최대치 경신’보다 ‘수주 내용 변화’에 있다. 전통적인 건축·주택 중심에서 벗어나 해외·에너지 부문이 실적을 주도하는 구조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해외 수주에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 대형원전 기본설계 계약과 핀란드 신규 원전 사전업무 계약(EWA), 미국 태양광 발전사업,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 등 저탄소 에너지 전반에서 성과를 냈다. 여기에 사우디 송전선, 수도권 데이터센터 수주를 더하며 에너지 생산·송전·소비로 이어지는 밸류체인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비경쟁 수주 비중이 높아진 점도 실적 개선의 배경이다. 이라크 해수공급시설(WIP) 사업은 30억 달러를 웃도는 수주고를 기록했는데 이는 가격 경쟁보다 장기간 축적된 기술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사된 사례로 꼽힌다. 기본설계(FEED) 단계부터 참여해 EPC로 이어지는 수행 구조, 사업 초기 기획·투자 단계에서의 선제적 관여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한 변화된 사업 방식으로 평가된다.
현대건설의 성과는 국내 해외건설 시장 전반의 회복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472억7000만 달러로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체코 원전을 중심으로 유럽 수주가 급증했고 플랜트·원자력 등 고부가 공종 비중이 확대됐다. 현대건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에너지 중심 전략을 선제적으로 구체화하며 실적 반등을 구조적 성장으로 연결시켰다는 분석이다.
특히 현대건설의 해외 수주 성과는 단기적인 시장 호황에 편승한 결과라기보다 최근 해외건설 시장의 구조 변화와 맞물려 나타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글로벌 발주가 단순 토목·건축에서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발전·전력 인프라로 이동하는 가운데 현대건설은 원전과 신재생, 송전 등 정책·산업 수요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분야에 집중해 왔다.
수주 실적의 양적 성장과 함께 사업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기본설계와 사전업무 단계부터 참여한 프로젝트 비중이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 위주의 도급 사업보다 기술·기획 역량이 반영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향후 수익성 변동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올해 이후에도 에너지 사업 중심의 확장은 이어질 전망이다.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미국 SMR 프로젝트, 해상풍력과 송전, 데이터센터 등 다수의 프로젝트가 본격 단계에 들어설 예정이다. 최근 조직 개편을 통해 해상풍력·양수발전·수소·암모니아·데이터센터 등 미래 핵심 사업 전담 조직을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에서는 도시정비사업이 수주 실적의 하단을 안정적으로 지탱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정비사업에서만 10조5105억원의 수주를 기록하며 국내 최초로 연간 10조원 고지를 넘었다. 개포주공 6·7단지, 압구정 2구역 등 상징성이 큰 사업지를 잇달아 확보하며 7년 연속 1위를 유지했다. 해외·에너지 부문이 성장축이라면 정비사업은 변동성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의 이번 수주 실적을 두고 “규모 경쟁에서 벗어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와 에너지를 성장축으로 국내 정비사업을 안정축으로 삼은 이중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현대건설의 수주 전략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지난해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미래 성장 전략을 발표한데 이어 역대 최고 연간 수주 실적을 올리며 지속 성장의 토대를 확고히 했다”라며 “2026년은 그동안 준비해 온 변화를 본격적으로 실행하는 해인 만큼 현대건설의 핵심 프로젝트들을 미국과 유럽 각지에 선보여 글로벌 에너지 패권의 흐름을 주도하고 대한민국 건설산업의 미래 변화를 주도하는 새로운 도약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