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선호 기자] “실적 관리가 중요하지 않았죠. 신약의 경쟁력과 가치를 증명하는 게 우선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 단계에서 R&D 투자에 따른 손실은 당연한 얘기였죠. 하지만 지금은 미래를 증명하기보다는 과거의 실적 관리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바이오 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만나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투자유치의 고충을 토로했다. 코로나19로 요동쳤던 바이오 시장이 이제는 자금난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임상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실탄 부족은 생존의 불확실성을 높인다.
R&D 중심의 바이오는 그동안 실적 관리보다는 투자유치가 중요했다. 개발단계에서 기술이전을 하지 않는 이상은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할 수는 없었다. 연구개발비 부담으로 인해 영업손실이 이어지는 것도 이상 현상은 아니었다. 실적은 정말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내지 못했다.
투자유치 경쟁력은 후보물질의 임상 승인 가능성과 상용화 시 기대할 수 있는 시장점유율이었다. 향후 시장점유율과 이에 따른 후보물질의 가치 산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우선적으로 의약품 시장규모 중 후보물질 치료제가 차지하는 비중 등을 계산한다.
해당 자료는 대부분 조사기관의 보고서를 인용한다. 이를 토대로 후보물질이 임상을 거치며 입증한 효과를 분석하고 적정 가격대를 기관에 의뢰하면 대략적인 미래현금흐름을 예측해볼 수 있다. 그 흐름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는 개발 중인 신약의 각 단계의 임상 결과였다.
바이오 기업의 경우 상용화 이전에 기술이전을 통한 마일스톤이 주요 매출이다. 마일스톤은 신약 개발과 협력을 통해 각 단계에서 설정된 ‘성과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지급받는 기술료를 의미한다. 알테오젠이 2020년 머크와 ‘키트루다’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것이 주요 사례로 꼽힌다.
올해 피하주사(SC) 제형 ‘키트루다’가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으로부터 허가를 받으면서 알테오젠은 2500만달러의 마일스톤을 지급받았다. 알테오젠은 현재 바이오 대장주로서 2014년 기술특례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기술특례 상장 후 이러한 성과를 거두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최근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 발생에 이어 관리종목 편입 위기에 직면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특례 상장사에게 부여된 유예기간이 종료되고 있는 중이다.
법차손(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 매출 규모 등 요건을 충족해야 코스닥 상장사로서 유지될 수 있다. 연간 매출 30억원 미만이거나 자본잠식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면 상장 폐지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지난 현재 그 기간이 도래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오 기업이 재무제표를 뜯어보며 그동안 보지 않았던 ‘숫자’에 집착하고 있다. 매출을 채우고 손실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임상 결과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며 소식을 기다리던 뜨거운 열기가 이제는 차가운 재무제표의 평가 앞에 서 있다.
그 안에서 ‘옥석’이 죽지 않고 살아남기를 기대할 뿐이다. 앞선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겼다. “진짜는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살아 남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