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나연지 기자] KT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사상 초유의 ‘무더기 증인 소환’ 대상에 올랐다. 통신업계 국감 증인 채택은 대표이사 한명으로 국한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전·현직 CEO를 비롯해 차기 사장 후보, 국민연금 고위 인사, 사외이사, 내부 감사 책임자, 외부 용역업체 대표까지 줄줄이 국회 증인 명단에 올랐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10월 13일 과기정통부, 14일 방통위, 21일 산하기관을 상대로 종합 국정감사를 진행한다. KT는 이틀에 걸쳐 대표와 임원 다수가 증인석에 앉는다.
김영섭 대표이사는 과장광고 및 해킹사고와 관련해 14일과 21일 과방위에서 두 차례 증인으로 소환된다. 더불어 정무위도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이유로 증인 채택을 의결하면서, 김 대표는 두 상임위를 오가며 증언대에 서게 됐다. 황태선 정보보안실장(CISO), 허태원 컴플라이언스추진실장, 추의정 감사실장, 이용복 부문상무, 서창석 네트워크부문장 등도 21일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법무 라인에서는 검찰과 로펌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용복 부문상무는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와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를 거친 인물이다. 추의정 감사실장 역시 대구지검 김천지청 부장검사 출신으로, 법무법인 광장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했다. 준법지원실을 맡고 있는 허태원 실장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출신으로, 넷마블 사외이사 이력을 갖고 있다.
보안·네트워크 라인에서도 책임자들이 전원 소환됐다. 황태선 CISO는 개인정보·정보보호 총괄 책임자이며, 서창석 부문장은 전국 유·무선망을 관리하는 네트워크 총괄이다. 국회는 이번 소환을 통해 KT 내부 보안 체계와 관리 프로세스를 전방위적으로 따져 묻겠다는 방침이다.
사장 교체 논란과 관련해서는 구현모 전 대표, 윤경림 전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최종 사장 후보), 윤정식 KT텔레캅 사외이사가 소환된다. 윤정식 이사는 대기업·금융권 이사회 경험을 가진 법조인 출신으로, 이번 국감에서는 이사회 책임 문제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여기에 최대주주 국민연금 소속 인사들까지 소환됐다. 김태현 이사장(前 금융위원회 사무처장)과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前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은 KT 사장 선임 과정에 연금 측이 개입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증인으로 불려나왔다. 아울러 KT의 제3자 보안용역 발주와 관련해 티오리한국 박세준 대표도 증인석에 앉게 된다.
올해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채택된 증인과 참고인은 총 134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KT 관련 증인만 10명 이상을 차지해 “사실상 KT 청문회”라는 말이 나온다.
KT 증인 명단이 대폭 늘어난 직접적인 계기는 사장 교체 과정이다. 구현모 전 대표가 연임에 실패하고, 윤경림 후보가 중도 사퇴한 뒤 차기 대표 선임 과정이 지연되면서 국민연금의 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연금은 KT 지분 약 1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사장 후보 추천 절차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왔다.
특히 서원주 기금운용본부장은 후보 검증 과정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인물로 지목돼 집중 추궁이 예상된다. 김태현 이사장 역시 연기금 차원의 공식 입장과 책임 범위를 설명해야 한다. 윤정식 KT텔레캅 사외이사 역시 이사회 운영 책임을 묻는 질의에 직면할 전망이다.
이처럼 전·현직 CEO, 차기 사장 후보, 국민연금 고위 인사, 사외이사까지 증인으로 소환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단순히 KT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차원을 넘어, 공적 연기금의 기업 지배구조 개입 문제와 이사회 운영 실태까지 국회가 직접 검증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사장 교체 논란과 함께 KT 해킹 사고 역시 국회 소환 확대의 배경이다. 지난달 발생한 무단 소액결제 피해 사건은 수십만 이용자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며, KT의 보안 관리 부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국회는 김영섭 대표뿐 아니라 보안·법무·감사·네트워크 등 관리 책임자를 전원 소환해 “보안 체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불법 초소형 기지국 ‘펨토셀(Femtocell)’은 정부 인증(ISMS-P) 범위에서 제외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커졌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인력·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 무선기지국 검사는 전파 간섭·성능 위주로 이뤄져 보안성 검토는 사실상 공백 상태였다.
KT가 보안업무 일부를 외부 용역에 맡긴 과정도 도마에 오른다. 과방위는 티오리한국 박세준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발주 절차와 계약의 투명성, 외부 용역이 실제 효과를 발휘했는지 여부를 따질 계획이다.
이번 국감은 KT 경영진의 책임 규명을 넘어 통신업계 지배구조와 정부 보안 제도의 허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도 같은 날 증인 명단에 포함돼, 해킹 대응 전반에 대한 질의가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