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나연지기자] 내달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전력망과 에너지 안보가 핵심 의제로 논의될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정부의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과 맞물려 HVDC(초고압직류송전) 핵심 설비인 변환소와 해저케이블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육상 변환소 국산화를 고도화하며 내수·정책 키워드를 사업 축으로 잡고, LS전선은 해저 케이블 글로벌 수주를 이어가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내수와 글로벌로 분화된 투트랙 전략이 맞물리며 한국판 HVDC 밸류체인(변환소–해저케이블–시공까지 잇는 전 과정)이 구체화되는 국면이다.
효성중공업은 2024년 7월 30일 경남 창원공장에서 HVDC 변압기 전용 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부지 면적은 약 2만9600㎡이며, 총 투자액은 3300억원(공장 신축 2540억 포함)이다. 공장은 2027년 7월 완공을 목표로 한다.
효성중공업은 2017년 HVDC 개발에 착수해 지난해 국내 최초로 200MW급 전압형 HVDC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향후 2GW급 대용량 전압형 HVDC 기술 개발을 추진하며, 이번 공장 신축을 통해 대용량 전압형 컨버터 시스템 제작시설 증축과 R&D 과제를 병행한다. 공장이 본격 가동되는 2028년 이후 창원공장 전체 변압기 생산능력은 약 20%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전압형 HVDC 기술은 소수 해외 전력기기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2017년부터 약 1000억원을 투자해 국산화를 추진해 왔으며, 지난해 양주 변전소에 변환설비를 구축해 실증에 성공했다.
LS전선은 2019년 대만 해상풍력 시장에 진출한 뒤 현재까지 10건을 연속 수주했다. 최근에는 서부 18km 해상에 조성되는 ‘포모사4’(495MW) 프로젝트에서 약 1600억원 규모 해저케이블 계약을 체결했으며, 개발사는 시네라 리뉴어블 에너지다.
앞서 상용화 1단계 8개 프로젝트를 모두 수주한 데 이어 2단계에서도 펑미아오(Fengmiao)에 이어 포모사4까지 연속 수주에 성공했다.
자회사 LS마린솔루션은 올해 4월 대만에서 해저케이블 매설 계약을 확보했다. 국내 해저 시공사 가운데 최초로 해외 시장에 진출한 사례다.
LS전선은 케이블 생산(LS전선)과 해상 매설(LS마린솔루션)을 결합해 프로젝트 리드타임과 인터페이스 리스크를 동시에 낮추는 밸류체인을 본격 가동하게 됐다.
LS에코에너지도 동남아 데이터센터 전력망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 자바 서부의 대규모 클라우드 리전에 초고압 케이블을 공급했으며, 지난 5월에는 필리핀 최대 규모 데이터센터인 STT 페어뷰 캠퍼스에 중·저압 케이블을 납품했다. 데이터 현지화 정책 시행과 AI 연산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동남아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는 추세다.
정부는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해 호남 재생에너지 단지와 수도권 수요지를 연결할 계획이다. 장거리 송전 손실을 최소화하고,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HVDC 기술이 필수적이다.
효성중공업이 내수·정책 축에서 변환소 국산화를 이끌고, LS전선이 수출·글로벌 축에서 해저 케이블·시공 밸류체인을 확장하는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두 축이 맞물릴수록 국내 밸류체인의 가격 경쟁력과 납기 신뢰도는 높아지고, 글로벌 전력 인프라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입지도 강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