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IP(지식재산권) 분쟁을 비롯해 영업비밀 유출, 계약 해지, 내부 갈등 등 다양한 이유로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개발자 이직과 유사 게임 출시를 둘러싼 갈등은 산업 관행에 대한 법적 기준을 다시 세우고 있으며, 기업 간 소송은 게임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FETV가 주요 분쟁 사례를 중심으로 사건들을 둘러싼 핵심쟁점과 그에 따른 여파 등을 살펴봤다. |
[FETV=신동현 기자] 퇴직자가 기억만으로 과거 기획을 재현한 ‘기억 기반 침해’를 영업 비밀 침해로 볼 수 있을까.
4년째 이어지고 있는 넥슨과 아이언메이스의 재판으로 인해 게임업계의 자가 복제식 개발 방식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넥슨과 아이언메이스는 '다크앤다커' IP 저작권 분쟁 건으로 4년째 소송 중인 가운데 지난 2월 법원은 아이언메이스의 영업방해를 인정하고 85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기억 기반 침해’란 퇴직자가 별도의 자료 유출 없이 과거 근무 중 습득한 비공개 기획 정보를 기억을 통해 재구성해 사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 ‘P3’와 ‘다크앤다커’, 4년 동안 이어진 소송
아이언메이스는 넥슨의 내부 프로젝트 ‘P3’ 디렉터였던 최주현 씨를 포함한 전(前) 넥슨 직원들이 2021년 설립한 독립 게임 스튜디오다. 넥슨은 같은 해 아이언메이스가 ‘P3’ 개발 자료를 무단 유출해 신작 게임 ‘다크앤다커’를 개발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현재까지 4년간 이어지고 있다.
‘P3’는 PvE·PvP 혼합형 익스트랙션 슈터 장르로, ‘다크앤다커’ 역시 유사한 던전 탐색 기반의 게임이라는 점에서 표절 논란이 시작됐다. 넥슨은 1만1000여 개의 ‘P3’ 관련 파일이 유출됐다고 주장했으며 ‘다크앤다커’ 개발 과정에 전직 넥슨 개발자 8명이 참여했고 일부는 아이언메이스의 주주라고 지적했다.
반면 아이언메이스는 ‘다크앤다커’가 독립적인 창작물이며, ‘P3’와의 유사성은 장르적 특성에 따른 불가피한 범위라고 반박해왔다. 이들은 또한 전 직장에서 얻은 경험을 활용한 창작 활동을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넥슨은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소송을 진행했으나 미국 법원은 2023년과 2024년 “주된 행위가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각하했다. 한국에서는 2023년 1월 넥슨의 ‘다크앤다커’ 서비스 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아이언메이스의 수익창출은 이어질 수 있었다.
◇ 저작권 침해는 X, 영업비밀 침해는 O
지난 2025년 2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63부는 넥슨과 아이언메이스 간 민사 1심에서 저작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되 영업비밀 침해는 인정하며 아이언메이스에 85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자료 FETV]](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730/art_17536019219864_6c79fa.png?iqs=0.044027645473182275)
재판부는 먼저 ‘다크앤다커’가 넥슨의 ‘프로젝트 P3’를 모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P3는 익스트랙션 게임 장르에서 핵심으로 여겨지는 탈출 메커니즘이나 외부 육성 시스템 등이 부족했고 다크앤다커에는 선술집 대기실이나 부활의 제단 같은 독자적 시스템이 구현돼 있어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다고 봤다. 넥슨이 저작권 침해로 주장한 게임 구성 요소 대부분은 장르 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전형적인 요소로 독창성이 인정되는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반면 영업비밀 침해는 인정됐다. 법원은 P3의 구성 요소와 조합이 단순한 아이디어나 경험이 아니라 넥슨에 귀속되는 조직적 자산이자 기밀 정보라고 판단했다. 아이언메이스가 전직 P3 팀원 8명을 채용하고 일부가 주식을 보유한 점, 개발 초기 기획 과정을 생략하고 서버 시스템부터 착수한 이례적인 속도 등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던전 구조, NPC 상점, 거래 시스템 등 구체적인 게임 요소를 기억을 기반으로 재현한 부분을 ‘기억 기반 침해’로 보고 영업비밀 침해로 인정했다. 일반적인 경험과 기술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지만, 구체적이고 비공개된 설계 정보를 전 직장에서 얻은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경우에는 법적으로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기억 기반 침해’란 퇴직자가 별도의 자료 유출 없이 과거 근무 중 습득한 비공개 기획 정보를 기억을 통해 재구성해 사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법원은 이 같은 방식으로 전 고용주의 핵심 자산이 사실상 복제될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전 직장에서 얻은 구체적이고 비공개된 정보는 일반적인 경험과는 구분된다고 봤다.
◇ 흐름 뒤집기는 어려워…추후 쟁점은 배상금
넥슨과 아이언메이스는 항소심을 신청했다. 아이언메이스 측은 다크앤다커의 매출과 이익을 기반으로 85억원의 손해배상액이 산정됐지만 P3가 출시되지 않은 프로젝트인 만큼 손해 추정의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넥슨은 손해배상 규모가 너무 적다는 이유를 들었고 이에 항소심에서 손해 규모를 200억원 이상으로 확대 청구할 계획이다.
아이언메이스 측은 손해 추정 근거의 어떤 부분이 불분명한지에 대한 본지의 질의에 대해 “법정 쟁점과 관련된 사안이라 외부에 공유하기 어렵다”며 항소심이 진행 중인 상황임을 이유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업계에서는 항소심에서도 1심의 핵심 판단, 특히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한 부분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쟁점이 됐던 ‘기억 기반 침해’ 개념이 법적으로 정립된 만큼 판결의 구조가 바뀔 여지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국게임이용자보호연대 회장을 맡고 있는 이철우 변호사는 “핵심 쟁점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라며 “1심 판결 기조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재판은 결국 손해배상 규모가 조정되는 선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기존에 용인되던 자가 복제식 개발 방식에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법적 기준이 명확해지는 만큼 앞으로는 과거 성공작 반복 구조가 아닌 완전 새로운 게임 개발에 대한 압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항소심은 오는 8월 28일 오후 4시 30분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