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나연지 기자] SK하이닉스가 HBM(고대역폭메모리)용 TC본더 장비 공급사를 기존 한미반도체 단일 체제에서 한화세미텍 등으로 확대하면서 국내 반도체 장비 시장의 경쟁구도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
‘SK하이닉스 의존’에 머물던 한미반도체 역시 글로벌 시장 공략과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속도를 내며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최근 TC본더를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에 각각 428억원, 385억원 규모로 동시 발주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정상적인 공급망 다변화”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기술력·가격경쟁력 확보와 함께 독점구조 해소, 글로벌 밸류체인 리스크 분산까지 감안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TC본더는 반도체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 장비다. HBM 등 차세대 메모리 생산에 필수다. 그간 한미반도체가 사실상 SK하이닉스에 독점 공급해왔고, HBM 개발 초기부터 긴밀한 협업을 이어왔다. 한미 역시 SK하이닉스의 수요 기반으로 기술 고도화에 성공하며 글로벌 입지를 다져왔다.
양사 관계가 급변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 TC본더 시제품 테스트 및 초기 발주를 시작하면서 싱글벤더 구조를 벗어나 듀얼벤더 체계를 구축했다.
![[사진 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521/art_17479835418653_4e11c6.jpg)
지난 3월에도 SK하이닉스는 한화세미텍과 연달아 21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독점 지위에 위협을 받은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장비 가격을 25% 인상하겠다고 통보했고 SK하이닉스 공장에 파견한 전담 A/S 엔지니어도 철수시켰다. 지난해 9월 전담팀을 꾸린지 7개월 만이다.
한미반도체는 강경 대응과 동시에 미국, 대만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잇따라 수주 계약을 체결하며 ‘탈(脫) 국내 대기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5년 1분기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은 90%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미국 마이크론, 대만 TSMC와의 수주가 두드러진다. 마이크론은 생산능력 노출을 우려해 TC본더 장비 발주를 분산하는 등 신중한 조달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단일 제품·고객사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TC본더 외에도 차세대 패키징, 마이크로 본딩, 하이브리드 본딩 등 신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IR자료와 분기보고서에서도 “차세대 패키징 장비군 확대를 적극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의 공급망 변화는 국내 반도체 장비산업 경쟁 구도에 뚜렷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주요 장비업체들이 특정 대기업 의존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과 기술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서면서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경쟁력, 해외영업력 확보가 앞으로 국내 반도체 장비기업의 ‘생존열쇠’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