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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의 냉철한 현실인식

 

[FETV=권지현 기자]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올해 신년사가 지난해보다 1000자 이상 눈에 띄게 길어졌다. 새해, 함 회장 자신이 임기 3년을 마무리하는 데다 그룹이 출범 2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조직 구성원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어투도 달라졌다. 작년 첫 메시지에선 '금리'를 7번 언급하며 상생 취지로 회사의 성장과 고객의 어려움을 동시에 고려할 것을 임직원에 당부했다면 올해는 '위기'를 7번 말하며 불확실성이 증폭된 현재, 하나금융이 처한 현실과 집중해야 할 것들을 한층 무거워진 어조로 힘줘 말했다.  

 

◇그룹 포트폴리오 확장 대신 '축적' 선택  
 

함영주 회장은 올해 첫 메시지에서 '현실 인식'에 대한 문단을 가장 길게 할애했다. 이 중 절반이 인수합병(M&A)에 대한 생각이다. 함 회장은 "M&A가 단순히 덩치를 키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효율적인 자본 배분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어야 한다"며 "자생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M&A는 불필요하고, 조직에 심각한 부담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시장에 나온 매물에 관심을 두면서도 외형 성장 만을 위한 M&A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약 2개월 만에 연초부터 이 원칙을 시장과 그룹에 재확인해준 것이다.

 

하나금융은 리딩금융 경쟁자인 KB금융과 신한금융 수준으로 체급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기업가치 성장을 꾀하려면 비은행 계열사를 보강해야만 한다. 은행 계열사인 하나은행의 경우 2023년 연 당기순이익 1등을 차지할 만큼 경쟁력을 끌어올렸으나 비은행은 여전히 뒤처져있다. 이 때문에 하나금융은 MG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 보험사 매물이 등장할 때마다 유력한 원매자로 지목됐으나 매번 M&A 추진을 고사했다. 

 

하나금융에서 보험·증권·카드 등 비은행 부문의 그룹 순익 기여도는 작년 9월 말 기준 약 15%로, KB금융(40%), 신한금융(23%)에 못 미친다. 이런 가운데 우리금융이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품기로 하면서 올해 본격적으로 하나금융 추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함 회장으로선 임기 막바지에 접어든 새해, 이전과는 구별된 M&A 태도를 통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기대감을 안겨줄 유인이 충분했지만 그는 대신 '축적의 시간'을 선택했다.  

 

◇'기본기' 역설하며 자체 경쟁력 확대 방점 

 

함 회장이 선택한 그룹 축적의 시간은 '기본기 제고'로 집약된다. 그가 '위기'를 여러번 언급한 것과도 맞닿아 있다. 함 회장은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을 짧지 않게 언급하면서,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복잡한 전략이나 단기적 해결책 보다는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본'은 고객 저변 확대,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 효율적인 비용집행 등을 통해 구현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본업에 대한 경쟁력 확보로도 이어진다. 

 

사실 함 회장이 '업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그간의 분위기가 내부 역량 결집에 집중돼 있었다면, 올해 메시지는 다른 금융그룹에 견줘 하나금융의 내재된 태도를 지적하고 자기 반성에 방점을 뒀다는 점이 다르다. 그는 "비우호적인 시장 여건을 탓하거나 회사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낮은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을 당연시하는 인식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자들도 같은 조건하에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함 회장의 연초 메시지는 해를 거듭할수록 냉철해지고 있다. 지난 2022년 3월 취임 당시 "아시아 최고 금융그룹으로 도약하자"며 임직원들을 독려한 그는 이후에도 "불가능은 없다"면서 돌파, 확장에 무게를 둔 언급을 해왔다. 2023년 말 "지금까지 성장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더 큰 도약을 위해서는 어느 시점에서 잠시 숨을 골라야 한다"며 "되돌아보자"던 그는 2024년 신년사에서는 "10년 만의 역성장 위기, 비은행 부문의 성장 저하 등 그룹의 부족한 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회고했다. 

 

올해 신년사는 어쩌면 그가 그룹과 시장에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함 회장 임기는 오는 3월까지로, 현재 하나금융은 차기 회장 선임 행보에 한창이다. 현재 함 회장을 비롯해 이승열·강성묵 하나금융 부회장, 외부인사 2명 등 총 5명이 최종후보군으로 압축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