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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오른 은행 내부통제(중)] '재탕·뒷북' 금감원, CEO 책임추궁 카드 통하려면

 

[FETV=권지현 기자] '금융사고→경영진 책임추궁'. 수백억원 규모의 잇단 은행 금융사고에 당국이 꺼내든 칼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책무구조도 도입이 핵심인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지배구조법) 시행령 및 감독규정 개정안이 내달 3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임원과 임원의 직책별로 책무(責務·직무에 따른 책임이나 임무)를 배분한 문서다. 임원별 내부통제 책무를 사전에 명확히 하고, 내부통제 의무 이행을 부추기기 위해 도입됐다. 금융당국이 횡령 등 내부통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금융사 최고경영자(CEO)까지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과정 중심인 '금융사고 미발생'을 위해 결과 중심, 그것도 '인적처벌' 카드를 들고나왔다는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금융감독원이 '재탕·뒷북' 오명을 벗으려면 이번에는 철저한 자체 평가를 통해 금융사 내부통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꼬리자르기 단절 의의"...뒷북 대응은 여전 

 

당국은 책무구조도에서 금융회사 업무를 크게 ▲책임자를 지정해 총괄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영업 관련 부문별 업무 ▲경영관리 관련 업무 등 3가지로 구분하도록 했다. 이 중 횡령 등 금융사고에 대한 내부통제 총괄관리나 준법감시 같은 책임이 부여되는 업무는 '책임자를 지정해 총괄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에 분류된다. 

 

 

금융관련 단체들은 책무구조도 도입에 대해 일단 환영을 표했다. 김지우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지난 2019년, 2020년 DLF(파생결합증권) 사태 때 은행 CEO들에 대해선 직접적인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보니 실무자들 선에서만 징계가 이뤄졌다. 이런 꼬리자르기식 징계가 이뤄져선 안된다"고 했다. 이어 "경영진에 대한 제재가 있어야 직원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그동안 없었는데,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금융사고가 줄어들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꼬리자르기 단절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지만, '뒷북' 대응 비판도 있다. 금감원은 이번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두고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 방안'이라 추켜세웠다. 비슷한 언급은 이미 있었다. 2022년 11월, 우리은행의 '707억원 횡령'에 다급해진 금감원은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마련, "거액금융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듬해 경남은행에서 '3000억원 횡령'이 또 적발되자, 금감원은 올해 초 책무구조도를 들고 나와 '내부통제 강화'라 지칭했다. '혁신' 방안이 '강화' 방안이 된 순간이다. 단어만 바뀌었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금융당국의 태세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A은행 관계자는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감독당국이 은행들을 한통속으로 묶고 경영진을 불러내 망신주기, 가르치기식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면서 "은행의 책임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지난 수년간 당국이 땜질식 대책을 내놓은 것 역시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책무구조도는 필요하다고 보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안된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은행에만 책임을 묻고 정작 감독당국은 빠져나가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자체 평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현재 금융위, 금감원 정책 실패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한 상황이다. 하반기 감사가 예정된 만큼 이런 부분들이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7년전 대책 재탕...임원들은 이제야 '내 업무' 인식?  

 

내부통제 강화 방안 '재탕' 흔적도 보인다. 2022년 발표한 '내부통제 인프라 혁신'에는 ▲준법감시부서 인력·전문성 최소기준 설정 ▲준법감시인 자격요건 강화 등이 담겼다. 하지만 당국은 이미 2015년 9월 '은행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공지하면서 ▲준법감시부서 인력 확충 및 권한 강화 ▲준법감시인 결격요건 완화 및 독립성 강화 등 사실상 같은 내용을 내건 바 있다. 
 

이번 책무구조도 도입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금융사 임원들이 내부통제를 어떤 태도로 바라봤는지, 그리고 당국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새삼 알게 됐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 2월 책무구조도 기본 방향을 밝히면서, "앞으로 금융회사 모든 임원들이 내부통제를 자신의 업무로 인식하도록 하는 등 근본적인 금융권의 내부통제 행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4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내부통제를 자신의 중요업무로 인식하는 등 금융권의 근본적인 행태변화를 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 4개월 만에 같은 멘트를 냈다. 

 

총 자산 500조원 안팎인 대형은행 임원들이 숱한 '내부통제 강화' 외침 속에서도 정작 내부통제를 자신의 업무로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과, 금감원은 건당 100억원이 훌쩍 넘는 수년에 걸친 금융사고들을 통해 이를 알아차리고도 그동안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고백적' 언급인 셈이다.

 

B은행 관계자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설립된 금감원이 감독, 제재 업무를 게을리하고는 이제와서 금융사 임원들이 내부통제를 자신의 업무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시인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