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올해 들어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의 정기예금 신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최근 정기예금 금리가 4% 아래로 내려오면서 인기가 시들해진 데다, 안정적인 유동성으로 당장 수신을 확보할 유인이 크지 않은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 등 6대 은행 가운데 올 들어 정기예금 신상품을 내놓은 곳은 하나은행 한 곳뿐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2월 ‘지수플러스 정기예금’ 2종을 출시했다. 원금을 보장받는 주가지수 연동예금(ELD)으로 기초자산(코스피 200지수)의 변동률에 따라 이자를 준다. 수익률은 상품과 기준지수 상승분에 따라 연 3.50~4.40%이다.
이 상품의 모집 기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웬만한 특판 정기예금보다도 짧은 시한이다. 다른 대형은행 5곳은 아예 정기예금을 내놓지 않았다. 기간을 넓혀 최근 6개월간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하반기 국민은행(공동구매정기예금), 농협은행(NH올원e정기예금) 등이 신상품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반년 동안 정기예금 신상품 ‘0건’은 이례적이다.
반면 지방·특수은행들은 활발하게 정기예금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BNK부산·경남은행은 올해 정기예금 신상품을 선보였으며,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예금 금리도 최대 0.7%포인트 올렸다. Sh수협은행과 DGB대구은행, 광주은행도 정기예금을 새로 선보이며 수신 확보에 나섰다.
대형은행들이 정기예금 상품 개발·출시에 소극적인 것은 예금 상품의 인기가 사그라든 점과 무관치 않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지방·국책·인터넷전문은행 등 19개 사원은행의 정기예금 상품 금리(1년 만기 기준) 절반가량이 연 4% 아래로 내려왔다. 은행이 정기예금 금리를 산정할 때 참고하는 금융채 1년물 금리는 지난해 11월 7일 5.107%에서 지난 19일 3.524%로 뚝 떨어졌다. 소비자로선 기준금리(3.50%)보다 좀 더 높은 이자를 받기 위해 굳이 정기예금에 가입할 필요가 사라진 셈이다.
실제 정기예금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937조원으로, 3개월 전보다 7조2000억원 줄었다. 떠난 자금은 채권 시장이나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금융상품으로 향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개인의 채권 순매수액은 8조6554억원으로, 1년 전보다 6배가량 급증했다.
대형은행이 지방은행에 비해 당장 수신을 확보할 필요가 적다는 점도 정기예금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6대 은행의 평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103.7%로 금융당국의 권고치(100%)를 웃돈다. LCR은 향후 30일간 예상되는 순 현금 유출액 대비 고유동성 자산의 비율로, 수치가 높을수록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여력이 크다는 의미다.
대형은행들은 오는 6월 말 종료되는 LCR 규제 정상화 유예(92.5%) 조치에 대한 준비도 지방은행보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대형 시중은행들은 우량 등급을 앞세워 잇달아 은행채를 발행하고 있다. 고유동성 자산 확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굳이 수신 상품을 내놓을 이유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올해 국민·신한·우리은행이 채권 발행에 성공했으며, 하나은행은 현재 투자자들을 접촉하고 있다.
대형은행 한 관계자는 “수신을 확보할 필요가 크지 않다는 점이 정기예금 등 신상품 개발과 출시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 같다”며 “한국은행의 긴축 사이클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판단도 정기예금 금리의 하방 요인으로 작용해 소비자들이 예금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