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새 정부 들어 검찰 출신 인사들이 부처 및 공공기관 등의 요직을 꿰찬 가운데 검사들의 금융권 사외이사 진출도 늘고 있다.
이들은 특수부를 거치거나 고검장, 검찰총장 등 검찰 조직 내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로 더욱 주목도가 높다. 과거에는 금융사들이 변호사 출신들을 사외이사로 선호했지만 '정부 성향'을 고려해 검사 출신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마저 들린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검사·판사 출신 금융사 사외이사는 2020년 3월 말 32명(7.7%)에서 2022년 5월 말 39명(9.0%)으로 늘었다. 10%에 가까운 숫자로, '금융' 업권을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큰 비중이다.
사외이사제도의 근본 취지는 이사회의 독립성이다. 하지만 고위공직자 출신 사외이사들은 지배주주가 없는 금융사에 대해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반대로 금융사가 정부에 로비할 목적으로 선임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정부 또는 경영진으로부터의 이사회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에 컴플라이언스와 내부통제 차원에서 법률적 전문성이 필요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금융과 관련 사업에 문외한 인사를 검사 출신이라는 점만으로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보험·증권·카드·저축은행 등 업권별 상위사에서만 현재 10명에 가까운 전직 검사들이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 모두는 검사장급의 고위직 출신으로 해당 금융사의 준법 경영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물론 법적 이슈에 대해서도 힘 있는 조력을 해줄 만한 위치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NH농협금융지주는 지난 연말,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이종백 사외이사의 연임을 결정했다. 이 사외이사는 1950년생으로, 이사회 멤버 중 '최고령' 자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뒤 서울고등검찰청을 거쳐 2008년부터 로펌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9월 서울고등검찰청 감찰부 부장검사를 지낸 이석환 전 검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1964년생인 이 사외이사는 사법연수원 21기로, 제주·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등을 거쳐 서울고검에서 부장검사를 역임했다. 이후 법무법인 서정 대표변호사로 재직했다.
앞서 이 사외이사는 2021년 3월 말부터 2022년 10월 초까지 1년 6개월간 키움증권 사외이사로 있었다. 당시 키움증권 지분 11.87%를 보유하던 국민연금은 이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공직자윤리위원회 퇴직 공직자 취업심사 대상자로서 취업승인 결과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이 사외이사는 결국 선임됐다. 그는 키움증권 사외이사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임했는데, 키움증권 해임·퇴임일인 지난해 10월 4일 이전인 9월 28일에 산업은행 사외이사로 임명돼 논란을 빚었다.
NH투자증권은 지난 23일 서울동부지검 검사장을 지낸 박민표 사외이사를 재선임했다. 1963년생인 박 사외이사는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강력부장을 지낸 '강력통'이다. 업권을 막론하고 강력부장 출신 검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한 사례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대신증권은 작년 3월 춘천·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김성호 전 검사에게 사외이사직을 맡겼다. 그는 2006년 8월부터 1년여간 제58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삼성카드는 아예 검찰총장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작년 3월, 제37대 검찰총장을 지낸 김준규 전 총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임기 3년을 부여했다. 김 전 총장은 1955년생으로 법무부 법무실장과 부산·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거쳐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검찰총장으로 일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와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했다. 앞서 그는 2014~2016년 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도 역임한 바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 24일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이두봉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대검찰청 수사지휘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 대검 부패범죄특별 수사단장, 대검 과학수사부장 등을 지냈다. 2022년 9월 퇴직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외이사는 한 달 뒤 서울 서초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으며, 다시 6개월 뒤 교보생명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교보생명은 작년 3월에도 인천·춘천지방검찰청 검사장,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지낸 이영주 전 검사를 사외이사로 선택한 바 있다. 다른 생명보험사의 경우 법조계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할 때 주로 로펌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점에서 교보생명의 연이은 검찰 출신 영입은 이례적이다. 특히 이 사외이사는 2021년 3월 KB캐피탈 사외이사로 선임됐는데, 1년 뒤 교보생명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OK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의 사외이사는 '특수통' 출신 검사다. 2022년 4월 OK저축은행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영렬 전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출신으로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을 맡은 바 있다.
현대캐피탈은 작년 8월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을 지낸 김기동 전 검사를 사외이사로 선택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3부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 변호사를 맡았다. 현대캐피탈이 검사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제개혁연구소 관계자는 "사외이사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격 규정과 공시의무가 강화됐으나, 고위공직자 출신 등 이해관계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관행은 여전하다"면서 "지난해 금융사 사외이사를 분석한 결과, 금융연구원 출신 다음으로 검찰·법원 출신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전직 검사들이 사외이사 임기 2, 3년을 채우기 전에 사외이사 '쇼핑'을 하는 사례를 적지 않게 보는데, 한 기업에서 사외이사 역할이 매우 큰 만큼 당사자와 기업 모두 책임성과 적합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준법 경영 차원에서 앞으로도 법조인의 경영 참여가 늘어날 것이지만 법률적 측면만으로 사외이사를 역임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다른 조건에 앞서 금융 비즈니스 전문성을 갖췄는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