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절반의 성공'
얼라인발(發) 기대가 실린 금융지주 배당 확대 경쟁이 싱겁게 끝나는 모습이다.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금융지주들은 일제히 이전보다 확대된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조건도 함께 내걸면서 '과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신호를 주주들에게 보냈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이달 7~9일 전년도 실적발표를 통해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9일은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국내 상장된 금융지주 7곳에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자본배치 정책과 중기 주주환원 정책을 도입하고 공식 발표까지 촉구한 '데드라인'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기 주주환원 정책'에는 금융지주 4곳이 모두 응답했다. 정확히는 얼라인이 총대를 멘 '주주들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표현도 얼라인이 요구한 대로다. 실적발표 자료에서 KB금융은 '중장기 자본관리계획', 신한금융은 '중기 자본정책 방향'이라 명명했으며, 하나금융은 '그룹 자본관리 및 주주환원 정책', 우리금융은 '그룹 자본관리계획'이라 이름 지었다. 4대 금융지주가 일제히 주주환원 관련 내용을 IR 자료에 못 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목할 것은 '조건'이다. 이번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4대 금융은 회계연도 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일정 수준을 초과할 경우, 초과 부분을 금액으로 환산해 다음 해 주주환원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올해 기준이 100원인데 120원이 생기면, 100원을 초과하는 20원은 이듬해 주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이다.
다만 재원의 규모를 판단하기 위해 중요한 '주주환원'이 구체적으로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중 어느 것을 뜻하는지, 둘을 합한 금액을 일컫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4곳 모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들이 내건 기준은 KB금융과 하나금융이 각각 13%와 13.5%, 신한금융과 우리금융이 동일한 12%다. 현재 금융당국의 규제비율은 10.5%이다.
보통주자본비율은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중 하나로, 위기 시 금융사의 손실흡수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자기자본을 금융지주의 자산에 위험가중치를 적용해 산출한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눠 산출한다. 보통주자본비율은 자본의 질적 측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최근 주요 국가의 금융당국은 이 지표를 중요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4대 금융지주 보통주자본비율 추이(단위: %). [자료 각 사]](http://www.fetv.co.kr/data/photos/20230206/art_16759543468329_437863.png)
문제는 보통주자본비율이 4대 금융이 내건 기준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작년 12월 말 기준 KB금융과 신한금융은 각각 13.25%, 12.73%,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13.15%, 11.5%를 기록했다. 이들이 제시한 기준을 초과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KB금융과 신한금융은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며,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0.5%포인트 가량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보통주자본비율은 유상증자 혹은 당기순이익 증가를 통해서만 개선할 수 있다. 이중 유상증자는 주가가 하락할 수 있어 선택하기 쉽지 않고, 순익 증대는 그만큼 RWA 증가도 함께 떠안아야 해 부담이다. 배당을 늘릴수록 보통주자본비율이 낮아지고,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받는 점도 계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실제 4대 금융은 전향적으로 배당을 늘린 지난해, 일제히 역대급 순익을 거두고도 KB·신한·하나금융 3곳은 1년 전보다 보통주자본비율이 하락했으며, 우리금융만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각각의 금융지주가 얼마나 정교하게 자본배치 계획을 수립, 실행 하느냐에 따라 주주환원 여부와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얼라인이 중기 주주환원 정책에 더해 '자본배치 정책'을 금융지주에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얼라인은 대출 증가율을 낮춰 RWA 상승분을 제한하면 주주들에게 돌려줄 재원을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주주서한에는 GDP 성장률을 감안해 4%의 RWA 증가율을 제시했는데, 이를 적용하면 국내 은행 지주 전반적으로 50~60%의 배당재원이 산출된다.
하지만 금융지주 4곳 가운데 대출자산 관리나 RWA와 관련해 의미 있는 의견을 내놓은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자본비율과 연동한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한 것 자체가 변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좀 더 심도 있는 고민을 듣지 못한 것이 아쉬운 이유다.
김은갑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본비율 차이가 주주친화정책 기대감의 차이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일정 수준의 주주친화정책 강화까지는 자본비율이 큰 차이를 가져오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주주친화정책 강화의 속도는 자본비율 차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