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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마지막 선물'은 스타트업계에

남은 임기 한달 윤종원 기업은행장, 한국판 '실리콘밸리 벤처대출' 첫 도입
모험 자본시장 고민 담아...금융권에 '생산적 금융 공급자' 역할 제시

 

[FETV=권지현 기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한국판 '실리콘밸리 벤처 대출'을 도입, 국내 스타트업계에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고 자리를 떠난다. 윤 행장의 임기는 내년 1월 2일까지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재무성과와 담보가 부족해 일반대출을 받기 어려운 유망 스타트업에게 후속 투자를 받을 때까지 브릿지론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벤처 대출 상품을 선보인다. 대출을 받을 스타트업은 전문성을 지닌 벤처캐피탈(VC), 액셀러레이터(AC)들의 추천을 받은 뒤 기업은행이 자체적으로 선발한다.

 

기존 기업 대출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기업은행은 이 상품을 내놓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식 벤처 대출을 국내 환경에 맞게 수정 보완했다. 글로벌 스타트업의 산실 실리콘밸리의 생태계를 국내에 선보이기 위해 쉽지 않은 고민과 과정을 거쳤다는 얘기다. 국내 금융사가 실리콘밸리식 벤처 대출 모형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통적인 실리콘밸리 벤처 대출이 초기 투자유치에 성공한 유망 스타트업이 사업 중기 이후에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없도록 신주인수권부사채가 붙은 단일 대출 상품이라면, 기업은행의 이번 모델은 대출과 신주인수권부사채 각각을 조합해서 하나로 만든 새로운 형태의 상품이다.

 

기업은행 혁신금융부 관계자는 "미국 방식 그대로 국내에 도입하는 것은 관련 법안이 현재 계류 중이라 애로 사항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미 실리콘밸리식 벤처 대출에 상응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현재의 방안을 고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은 이번 상품을 통해 벤처투자기관으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은 유망 스타트업에게 낮은 이자로 사업 자금을 지원하고, 향후 신주인수권부사채의 권리를 활용해 기업가치 상승이익을 공유한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일정액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을 말한다.

 

이 관계자는 "최고경영자가 국책은행장으로서 취임 이후 모험 자본시장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정책금융 측면에서 현 상황을 바라볼 기회가 있었는데, 초기기업에 대한 후속 지원과 액셀러레이팅 지원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초기기업이 후속 투자를 유치하기까지는 첫 투자금으로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데, 이때 기업들이 예측하지 못한 경우도 생기고 요즘같이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경우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들 스타트업들이 시장에서 사장되지 않고 활력을 얻을 수 있도록 이번 상품 모델 도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을 비롯한 국내 대형 금융사들은 유망 스타트업을 선발, 육성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기술력을 지닌 혁신 스타트업을 선발하고 경영컨설팅, 투자유치, 글로벌 진출 기회 등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는 '한발 물러선' 지원 성격이 강해 좀 더 적극적인 투자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하게 제기됐다. 금융사가 VC와 손잡고 초기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성장 단계에서 자금 회수(엑시트)까지 하는, 좀 더 공격적인 자금 운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본지 참고기사, 4대 금융,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지원' 가속도...다음 과제는)

 

이는 초기기업에게는 자금 수혈과 성장 동기를, 금융사에게는 금융 효과에 따른 새 수익원을 안겨다 줄 수 있어 '윈윈'이다. 일례로 미 실리콘밸리은행(SVB)은 기술 스타트업에게 신용과 은행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한 결과 총자산이 2018년 570억3500만달러에서 지난해 2114억7800만달러로 4배가 됐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스케일업 단계의 중·후기 투자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기업은행의 이번 '도전'이 큰 의미를 갖는다. 국내 금융사들도 생산적 금융 공급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기업은행의 벤처대출 출시는 어찌보면 예견된 결과였다. 윤종원 행장은 금융권과 스타트업계가 하나가 된 실리콘밸리 생태계를 접한 뒤 그의 깊은 고민을 공개한 바 있다.

 

윤 행장은 지난 4월 미국 출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VC, AC, 벤처전문은행 등을 만난 뒤 "(이들은) 단순히 돈을 쫓는 하이애나가 아니라 유망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알아보고 회사의 성장을 도우며 수익을 함께 추구하는 글로벌 혁신리더였다"며 "IBK의 역할과 실행방안을 가다듬으려 한다"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긴 소회를 남겼다.

 

임기 만료를 한 달 앞둔 윤 행장은 본인의 '소명'을 가다듬었고, 이번 한국판 실리콘밸리 대출을 통해 스타트업에 '마지막 선물'을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