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권지현 기자]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자리행 이타행(自利行 利他行), 영과후진(盈科後進)...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고사성어를 인용해 핵심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표현에 차이는 있지만 의미는 한 가지, '사회적 책임'으로 모아진다. 서민들이 고물가·고금리에 신음하는 사이 은행들이 손쉬운 '이자 장사'로 역대급 실적 행진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행보로 읽힌다. 비 올 때 우산을 넓게 펴는 포용적 금융으로 이전보다 커진 사회적 책임 요구에 부응,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은 올해 9월 말까지 총 29조221억원의 이자이익을 냈다. 1년 전(24조1923억원)보다 20%(4조8298억원) 늘어난 규모다. 금융그룹 한 곳당 평균 1조2000억원씩 증가한 것으로, 분기 환산 시 3개월마다 4000억원의 이자이익을 더 거둔 셈이 된다.
E(친환경), S(사회적책임), G(지배구조개선) 경영 각 부문에 대해 소비자와 투자자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S'요소 역시 금융그룹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도 이들 회장들이 이전보다 '동반 성장'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도록 했다는 분석이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난 9월 29일 창립 14주년 기념식에서 임직원에 '사회적 가치 창출'을 강조했다. 특히 이날 윤 회장이 사회적 책임을 위해 구체적으로 전략을 밝힌 점이 이목을 끌었다. 통상 금융그룹 회장들이 향후 국내외 사업 확장 계획 등을 밝힌 것과 다른 모습이어서다.
이날 윤 회장은 올해 'Diversity(다양성) 2027 전략'을 수립해 저소득 근로자, 장애인, 글로벌 가정 등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이어 "'일일신우일신' 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자"며 "고객·사회와 동반 성장하는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자"고 역설했다.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과 각오로 새 출발을 하라는 의미의 일일신우일신을 사회 변화를 위해 금융업, 즉 KB금융이 앞장서겠다는 각오로 확장한 것이다.
앞서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조 회장은 지난 9월 1일 창립 21주년 기념식에서 '금융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그룹의 미션을 다시 한번 상기, "신한이 주도하는 공감과 상생의 금융 생태계를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이어 '자리행 이타행'을 힘차게 외친 뒤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운 고(故) 이어령 선생님께서 포스트 팬데믹을 준비하는 우리 사회를 향해 강조하셨던 구절"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은 "'나를 돌보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타인과 사회를 대한다'는 의미를 가진 이 구절처럼 신한금융그룹도 공감과 상생의 가치를 기억하자"고 당부했다.
조 회장은 윤 회장이 Diversity 2027 전략을 세울 것이라 발표한 9월 29일, '신한 동행 프로젝트'를 통해 5년간 총 33.3조원 규모로 취약계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소상공인(개인)·중소기업 재기 지원(15.1조원), 서민 주거·생활안정 지원(13.6조원), 창업·일자리 지원과 청년 도약 지원(4.7조원), 사회적 책임 수행 등이다. '리딩금융'을 다투는 두 대형 금융그룹 회장들이 같은 달 동일하게 상생을 화두로 던지고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도 취임 5개월여 만에 취약계층과 함께 할 것이란 메시지를 내고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하나로 연결되는 행복금융'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소상공인·자영업자(35만명·19조원), 서민·청년·취약차주(25만명·3조원), 가계대출 실수요자(9만명·4조원), 사회가치창출(5년간 1조원) 등 총 네 부문에 걸쳐 연 70만명에게 26조원을 지원한다.
함 회장은 "대내외 경제 환경이 어려워질수록 금융이 먼저 앞장서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함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당시 옛 것을 물들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의 '염구작신'(染舊作新)을 언급, '함께 성장하는 금융'을 그룹 방향으로 제시했다.
앞서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7월 15일 열린 올 하반기 그룹 경영전략 워크숍에서 사자성어 '영과후진'을 선택했다. 물이 바다라는 목표를 향해 가다 웅덩이를 만나면 반드시 그 웅덩이를 채우고 다시 흐른다는 이 말처럼, 하반기 새 마음가짐으로 출발하자는 메시지다.
그가 이어 구체적으로 전한 '새 마음' 역시 '사회적 책임'이다. 손 회장은 "경영 성과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와 금리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자회사들에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도 지난 7일 국민은행 창립 21주년 기념사에서 '영과후진'을 언급, 은행 체력을 더 강하게 키워 사회적 책임을 포함해 더 큰 도약을 이뤄내자고 독려했다. 이 행장은 "요즘 '고객의 소리' 게시판을 보면 코로나 이후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힘들어 하는 고객의 절박한 사연이 올라오곤 한다"며 이전보다 강화된 사회적 책임 실천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