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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도심 나들이, 은행 최초 개방형 수장고 '하트원' 어때요?

하나은행, 을지로 폐쇄 점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
서울 '금싸라기 땅'에 미술품 110여 점 전시...유명 카페도 

 

[FETV=권지현 기자] "을지로 한복판에서 '붉은 산수' 화가 이세현의 작품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4가역 1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건물. 검은색에 영어-숫자 조합의 간판, 유리·타일로 외관을 갖춘 이곳은 얼핏 봐선 '용도'를 알기 힘들다. 입구 왼쪽에 달린 '미술을 담다' 문구를 통해 예술과 관련된 공간이라는 힌트만 있을 뿐.

 

하나은행이 지난 8일 국내 은행권 처음으로 개방형 미술품 수장고의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H.art1'(하트원). 하나은행은 중복 점포로 폐쇄했던 '을지로기업센터'(서울 중구 울지로 167)의 유휴건물을 9개월가량 공을 들여 리모델링 한 뒤 이곳의 문을 열었다. 수장고는 값진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를 뜻한다. 

 

지난 2020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기존 수장고를 개편해 새로 공개한 것이 큰 화제가 됐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은행'이 주체가 된 수장고 개방은 그 자체로 새롭다는 반응이다. 하나은행은 보유한 3000여 점의 미술품 중 세대, 지역, 계절 등을 고려해 110여 점을 먼저 선보였다. 첫 라인업 전시는 내년 1월까지로, 작품은 분기마다 주기적으로 교체·전시된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이은형 부회장, 박성호 하나은행장도 지난 8일 하트원을 직접 찾아 관람한 뒤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이번 개관은 하나은행이 '아트뱅크'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다. 기존 '미술+금융'을 뜻하는 아트뱅킹이 미술품 담보대출과 신탁, 세무 등 금융 기반이었다면 아트뱅크는 고객 각 사람에 무게를 둬 맞춤형 아트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을 필두로 아트서비스에 힘을 실어 자산가뿐만 아니라 미술과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들을 고객으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관련기사, '아비투스'를 아시나요? 하나금융이 푹 빠진 '이것'). 덕분에 시민들은 이세현, 이환권, 최영욱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10일 오후에 방문한 하트원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널찍한 공간에 작품들이 이동 가능한 형태로 여유 있게 전시된 모습이었다. 여타 개방형 수장고에 형태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이 좁게 줄지어 선 것과 대조적이다. 이곳에선 자세히 감상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작품을 내 눈앞으로 끌어와 나만의 취향을 실어 작품을 만끽할 수 있다.

 

하트원 관계자는 "현재 하나은행은 명동, 청라에 수장고를 두고 있지만 창고의 성격이 짙어 비공개인 반면, 이곳에선 하나은행이 보유한 서양화, 동양화, 판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며 "언제든 도슨트를 통해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10일 점심시간에도 근처 직장인 100여 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하트원은 총 4층으로 구성됐다. 1층에 들어선 '해방촌 핫플' 업사이드커피에서 커피를 마신 뒤 '메인' 2층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하트원 이용 팁이다. 만일 내 미술 소장품을 금고처럼 은행에 맡겨두거나 미술품 매입·매각 관련 투자 자문을 받고 싶다면 3층으로 향하면 된다. 신진작가로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할 곳을 원한다면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인 4층을 활용해 보자. 대관료는 없다. 다만 올해 12월까지는 이미 예약이 꽉 차있다. '미공개' 5층은 하나은행이 점차 루프탑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값비싼) 작품을 물었더니, 20여 년간 '카르마' 연작을 그려온 것으로 유명한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란 대답이 돌아왔다. 다복을 상징하는 달항아리 그림은 기자에게도 꽤 익숙한데 이 작품은 가까이 볼 때와 거리를 두고 볼 때 느낌이 다르니 꼭 방문해서 감상해 보길 바란다.

 

하트원 도슨트는 "달항아리 안에 그은 수많은 선이 이어지고 갈라지는 모습이 반복되는데, 이는 만나고 헤어졌다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우리의 인생길 즉 카르마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전시관 끄트머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는 이환권 작가의 조각품도 하트원의 애장품이다. 작가는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설명한 언어가 없으니 본질과 형상의 관계도 아직까지는 없는 것'이란, 다소 심오한 물음에서 이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이환권 작가는 사람의 몸이나 사물의 몸통을 실제와 다르게 만들어 묘한 착시효과를 주는 조각가로 유명하다. 덕분에 기자도 조각품을 감상하면서 '내가 보는 것이 진짜일까'하는 원론적인 물음을 던져보았다.

 

이외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조형물, 붉은색을 이용해 사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표현을 해내는 이세현의 그림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하트원을 기획한 하나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이 처음으로 선보인 개방형 수장고인 만큼, 국내 수장고를 모두 직접 다니면서 하트원만의 차별성을 연구했다"며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당초 의도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성격에 은행이 만들었다는 '의외성'이 더해지면서 재미가 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트원의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카페는 오전 8시∼오후 9시까지다. 관람료는 없고, 4층 기획 전시 중에는 주말에도 문을 연다. 건물 전체에 음악이 고르게 울려 퍼지도록 수억 원을 공들인 '고음질' 음향 서비스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