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권지현 기자] 시중은행의 신탁시장 주도권 싸움이 뜨겁다.
'신탁(信託)'은 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뜻이다. 고객들이 은행에 맡긴 돈을 채권,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관리, 처분까지 해주는 일종의 자산관리 서비스다. 국내 신탁 시장은 지난해 1000조원을 돌파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은 최근 한 달 새 모두 신탁 상품 출시, 확대에 나섰다. 같은 기간 예적금 상품은 보기 드문 것과 대조적이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 직원은 "최근 프라이빗뱅커(PB)로 업무가 변경됐는데 특히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신탁 관련 문의가 많이 늘었다"며 "이전보다 신탁 상품이 다양해져 고객의 구체적인 필요에 맞는 상품을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신탁 상품 출시가 늘어난 것은 저금리 장기화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지만 안정성과 수익성을 얻기 원하는 수요 덕분이다. 현재 시장은 그야말로 돈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통화 및 유동성' 통계에 따르면 5월 시중에 풀린 돈은 한 달 새 21조4000억원 불었다. 그러나 금리는 돈을 가진 개인 투자자들의 마음을 잡기에 역부족이다. 금융사들이 최근 출시한 예적금 금리는 기껏해야 1% 중후반대 수준이다.
'고령화'도 은행들이 신탁 상품을 내놓은 계기가 됐다. 몇 년 새 고령 인구와 1인 가구가 크게 늘자 재산 처분과 상속에 관한 여러 고민들이 신탁 상품 수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에 은행들은 고객 맞춤형 신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출시, 적극적인 고객 몰이에 나섰다.
국민은행은 최근 '반려동물'에 방점, 1500만 펫팸족을 공략했다. 지난달 출시된 'KB반려행복신탁' 상품은 반려동물의 양육을 위한 자산관리부터 상속까지 가능한 상품이다. 지난 2017년 9월 출시한 KB펫코노미신탁의 새 버전으로, 운용자산을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가입 고객에게 몰리스펫샵 할인쿠폰, 하림펫푸드 할인쿠폰, 21gram 장례비용 할인 등 반려쇼핑·여행·장례 등의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신한은행은 '상조'와 연계했다. 지난달 '신한 S 라이프 케어 상조신탁'을 출시, 고객이 상조회사를 사후수익자로 지정해 은행에 금전을 맡기고 본인 사망 시에 유가족이 상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조회사의 휴·폐업, 계약 미이행 등과 관계없이 고객의 자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신탁의 특징을 활용했다. 교원라이프, SJ산림조합상조 서비스도 할인받을 수 있다. 가입자 사망 후 상조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잔여재산은 상속 절차에 따라 반환한다.
우리은행은 금융권 '최초' 선(先)증여이벤트형 상품으로 고객 공략에 나섰다. '우리내리사랑 골드 신탁'을 통해 수증자는 계약서에 기재한 대학입학, 유학, 결혼 등의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증여자의 동의가 있을 경우 금 실물 또는 현금으로 수령할 수 있다. 최소 가입금액은 1000만원이며, 올해 연말까지 가입 고객 전원에게 증여세 신고 대행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나은행은 최근 연예인 등 유명인사 신탁 마케팅에 나섰다. 이들과 신탁 상품인 '리빙트러스트' 계약을 통해 신탁 부문 활성화를 적극 꾀한다는 방침이다. 리빙트러스트는 금전, 부동산, 유가증권 등 다양한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다 사망할 경우 자신이 지정한 사람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상속할 수 있는 신탁 상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