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현호 기자] 국내 시가 총액 2위 기업인 SK하이닉스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주가가 연일 하향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250여일 만에 11만원선이 붕괴됐다. 개인들이 순매수에 나섰지만 기관과 외국인들의 매도세를 따라 잡기엔 힘이 부쳤다. 이는 D램 가격에 대한 전망이 불분명하면서 시장이 크게 반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의 수익구조가 '반도체 1위' 삼성전자와 달리 D램에만 몰려 있는 만큼 가격 약세가 이어지면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D램에 의지한 성장이 어려운 가운데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산맥인 낸드플래시를 키우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최대액을 투자하며 인텔의 낸드 사업을 인수하기로 했고, 공정기술을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다. 만년 적자를 이어왔던 만큼 ‘턴어라운드’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 가운데 회사는 올해 ‘1년 흑자’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D램과 함께 새로운 날개를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D램 가격 둔화에...SK하이닉스 ‘휘청’=SK하이닉스 주가가 급락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11일 종가기준, 전날 보다 6.2% 감소한 10만55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최근에만 5거래일 연속 하향세를 나타냈으며 52주 신고가를 세웠던 지난 2월25일(14만8500원) 대비 28% 넘게 떨어진 상태다. SK하이닉스가 11만원선이 무너진 건 지난해 12월2일 이후 253일 만이다. 지난 5거래일 동안 개인들은 1조2220억원을 순매수하며 방어에 나섰지만 외국인들과 기관들이 각각 9960억원, 2410억원을 순매도했다.
약세를 나타내면서 투자자들의 얼굴은 잿빛이다. 지난달 회사가 2분기 실적 발표를 진행한 이후 ‘희망찬가’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 IBK투자증권 등은 회사의 목표주가를 16만원으로 설정했고 키움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은 각각 17만원, 18만원으로 내다봤다. 박유악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고객들의 D램 재고가 다시 낮아지기 시작했고 공급사들의 보유 재고도 1주 안팎까지 하락했다”며 “하반기 클라우드와 기업향 D램 수요가 강세를 보이면서 D램 유통재고가 감소하고 주가 반등이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가가 급락했던 배경에는 D램 고정가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D램은 1년 가운데 4개 분기가 시작되는 첫 달에 가격이 오르며 3개월 단위로 상승폭이 이어진다. 1분기는 1월, 2분기는 4월에 오르는 식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PC용 D램(DDR4 8Gb)의 7월 고정거래가격은 지난달 대비 7.89% 증가한 4.10달러로 나타났다. 앞서 이 제품은 전달과 비교해 1월에는 5%, 4월에는 26.67% 각각 상승한 바 있다.
하지만 트렌드포스는 지난 10일, “D램 공급업체들이 재고 조정을 이유로 가격을 계속 인하해 7월 초부터 현물 시장에서 PC용 D램 수요가 약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현재 PC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은 공급 부족을 이유로 높은 수준의 D램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PC용 D램 가격 인상 가능성에 하향 압력을 가한다”며 “유럽과 미국의 코로나19 규제 해제로 노트북, 컴퓨터에 대한 전체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렌드포스는 이 같은 이유를 들며 4분기 PC용 D램 고정거래가가 3분기보다 최대 5% 가량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밖에 서버용 D램도 가격 인상 없이 보합세를 유지하다 11월과 12월 고정가가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모델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모바일용 D램은 가격 변동 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사업이 지속적인 적자를 나타내면서 전체 영업이익 가운데 D램 비중은 100%가 넘는다. 따라서 D램 가격이 떨어지면 회사 입장에선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낸드는 구세주가 될까=사업 규모가 D램에만 편중돼 있는 만큼 회사의 성장을 더 이상 이끌기도 어렵고 가격 강세가 발생해도 주가를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만큼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산맥인 낸드의 성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는 국내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90억 달러를 투자해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했다. 현재 한국, 미국, 싱가포르 등이 이번 인수를 허가했으며 중국의 벽만 넘으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주력제품인 128단과 176단 4D 낸드를 앞세운 공정기술로 올해 낸드사업의 흑자전환을 노리고 있다.
황민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SK하이닉스의 규모를 100이라 보면 인텔은 약 절반에 해당하고 내년의 공정개선에 따른 증가를 감안하면 2022년 비트 성장이 100% 수준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수 이후 경쟁사들이 점유율을 일부 가져간다 해도 90% 수준의 비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인수 이후 인텔이 가지고 있는 가격의 프리미엄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만 올해 대비 큰 폭의 낸드 부문 개선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공개된 176단 4D 낸드는 올해 말 양산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이 제품은 이전 세대보다 비트 생산성은 35% 이상 향상되고 읽기 속도는 20% 빨라지며 데이터 전송 속도는 33% 개선됐다. 사측은 앞으로 모바일용 제품을 시작으로 소비자용 SSD와 기업용 SSD를 순차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96단 낸드부터 CTF와 PUC 기술을 결합해 개발하고 있다. 대부분의 3D 낸드 업체가 CTF만을 채용하기 때문에 SK하이닉스는 경쟁사와 차별화를 위해 4D로 명명했다.
주로 플로팅게이트로 제조되는 2D 낸드는 비트(Bit) 저장 공간인 셀을 평면으로 펼치기 때문에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셀간 간섭이 심해지면서 전자 손실이 발생한다. 반면, 셀을 얼마만큼 적층하는지가 기술 개발의 핵심인 3D 낸드는 CTF를 이용해 플로팅게이트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로써 활용하고 있다. CTF는 전기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인 전하를 부도체(不導體)에 저장하면서 셀간 간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주변부 회로를 셀 회로 하단부에 배치해 생산효율을 극대화하는 PUC 기술도 결합했다.
낸드는 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데이터 처리 속도가 가장 느린 제품이다. 하지만 데이터 저장 기능은 다른 제품을 압도한다. 전원이 꺼져도 저장된 데이터가 있는 만큼 휘발성 메모리인 D램과 달리 ‘비휘발성 메모리’로 불린다. 낸드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의 데이터센터 중축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낸드 시장은 4318억GB에 그쳤지만 평균 33.4% 성장해 2024년에는 1만3662억GB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 2018년 4분기부터 11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낸드 사업에서 SK하이닉스는 올해 흑자 전환을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컨퍼런스콜에서 “하반기 낸드 시황은 서버에서는 신규 CPU가 출시되고 모바일 5G 확산에 따른 신제품 출시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2분기보다 견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3분기에는 분기 턴어라운드가 예상되고 연간 흑자전환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