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이가람 기자] 올해 하반기 기업공개(IPO) 최대어들이 증권시장에 입성하기 전부터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조단위 몸값을 자랑하는 종목의 공모가가 잇따라 하락하면서 '과도한 시장 개입'과 '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주 카카오페이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카카오페이는 서둘러 상장주관사단을 불러모아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다음 주 예정돼 있었던 간담회를 취소하는 등 상장 일정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금감원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22조를 근거로 증권신고가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거나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의 기재 또는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내용이 불분명해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고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카카오페이가 기업 가치 산출을 위해 선정한 비교 기업의 부적합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페이가 페이팔·스퀘어·패그세구로 등 글로벌 핀테크 기업으로 피어 그룹을 꾸렸기 때문이다. 페이팔의 경우 한 분기당 매출액이 60억달러(6조8000억원)에 달하고 전 세계 25개 통화권에 진출한 공룡급인 만큼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카카오페이는 지난해까지 적자를 냈다.
별다른 문제 없이 증권신고서 심사를 마친 카카오뱅크도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희망 공모가격이 자기자본이익률(ROE) 대비 과도하다는 진단이다. 카카오뱅크는 기업 가치 산정 시 국내 은행들을 제외하고, 로켓 컴퍼니·TCS홀딩·노르드넷,·패그세구로 등 네 곳을 선택한 바 있다. 공모 규모도 크게 뛰었다. 시가총액으로 환산하면 15조7000억원∼18조5000억원 수준이다. 단숨에 우리금융지주(8조2000억원)과 하나금융그룹(13조1500억원)을 제치고, 주가 변동 추이에 따라 신한금융지주(20조100억)와 KB금융지주(21조8300억)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업 가치 산출 비교 대상은 핀테크 기업으로 선정하되 평가 방식은 전통적인 은행 평가 방법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PBR 높은 회사를 고르기 위해 사업 유사성이 떨어지는 해외 기업을 물색한 것으로 분석했다.
앞서 SD바이오센서와 크래프톤도 증권신고서를 정정했다. SD바이오센서는 두 차례에 걸쳐 공모가 희망 범위를 6만6000원~8만5000원에서 4만5000원~5만2000원으로 기존 대비 30% 남짓 낮추고서야 지난 16일 증권시장에 데뷔할 수 있었다. 현재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에 들어간 크래프톤 역시 공모가 희망 범위를 45만8000원~55만7000원에서 10% 이상 조정해 40만원~49만8000원으로 결정지었다.
증권가에서는 금감원이 공모가 하향을 유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SD바이오센서는 피어 그룹에 중소형주인 진매트릭스와 랩지노믹스 등을 추가했고, 크래프톤은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았던 디즈니와 워너뮤직 등을 제외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모가 희망 범위가 축소되면서 통과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투자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의 개입이 지나친 수준이라는 지적과 과열된 IPO 시장을 진화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역할이라는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엄격한 기준에 따라 기업의 성장성을 평가한다”며 “제시한 공모가가 비합리적일 경우 흥행에 실패하게 돼 발행사와 주관사가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는 입장이다. 적정주가는 시장이 형성한다는 의미다.
반면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모가 상향을 위해 발행사의 본질을 잊고 있어 비합리적인 금액의 희망 밴드가 조성되는 것”이라며 “공모주 광풍으로부터 투자자 손실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