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골리앗과 다윗의 '협력'
금융그룹 회장과 은행장 등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이 경쟁적으로 스타트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아끼던 과거와 달리 관련 행사에 참석, 직접 메시지를 보내며 스타트업의 마음을 얻고자 그야말로 '동분서주'다.
CEO들의 이러한 모습은 예비·우량 스타트업을 '키워' 해당 기업은 물론 지역사회에 득이 되게 한다는 사회적 책임과 연결돼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눈 뜨면 달라져 있는' 금융 환경과 연관이 깊다. 그간 금융권은 제1 덕목을 '안정성'에 두고 필요한 검증 절차들을 곳곳에 배치한 뒤 눈에 띄게 많거나 적지 않은 이자 이익 등을 내는데 집중해왔다. 이 시기에는 몸집을 불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마진 중심의 금융 수요가 가파르게 늘면서 안정성보다는 '수익성', '간편성'이 절실해졌다. 이는 최대 620조원의 자산을 가진 금융지주들이 골리앗의 무게를 벗고 '소년'의 모습을 지녔으나 시류에 맞는 아이디어와 융통성을 지닌 스타트업과 협력하지 않고는 고객의 필요를 제대로 간파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매년 스타트업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CEO가 직접 관심을 보여 해당 부서에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스타트업과의 협력은 이들이 지닌 '발칙한' 상상력을 우리의 사업 영역으로 끌어와 상생 금융을 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식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제주지역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JDC는 정보통신기술(ICT), 모빌리티 분야의 우수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사무공간 지원, 투자 연계 등을 통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신한금융은 제주 스타트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힘을 쏟을 예정이다.
조 회장은 "신한금융은 '신한 스퀘어 브릿지'를 통해 스타트업 육성 등 사회적 가치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협약을 통해 제주지역 스타트업 혁신성장 생태계를 구축,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직접 나서 스타트업과의 맞손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달 28일 손 회장은 서울시 관악구청·서울대학교와 함께 벤처·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 관악구 스타트업의 발굴·육성을 약속했다. 특히 벤처·창업도시 조성이 눈에 띈다. 손 회장은 오는 9월 관악구 신림동에 약 270평 규모의 스타트업 협력 센터인 '디노랩' 제2센터를 오픈할 계획이다.
손 회장은 "벤처생태계 구축에 참여하게 돼 기대가 된다"며 "이번 협약을 계기로 혁신 스타트업 발굴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인 국민은행장도 스타트업 성장 센터 개소를 통해 스타트업 지원에 큰 관심을 보였다. 허 행장은 지난 8일 '관악 KB이노베이션 허브' 개소식에 참여, 우수 창업기업 발굴과 혁신기업 육성에 힘쓸 것을 약속했다. 관악 KB이노베이션 허브는 KB금융그룹과 KT가 벤처·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관악S밸리 스타트업센터 5~6층에 자리 잡는다. 이곳에서 1년간 연구개발(R&D) 공간 제공, 경영 컨설팅, KB금융과의 사업연계·투자지원 등을 통해 초기 스타트업들이 단계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허 행장은 "KB금융그룹은 국내 금융사 처음으로 핀테크랩 'KB인베이션 허브'를 통해 축적된 스타트업 육성 경험과 협력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며 "사업화 지원, 투자연계 등을 통해 스타트업에 성장 단계별 맞춤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부행장이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위해 발빠르게 뛰고 있다. 이상래 부행장은 지난달 8일 농협은행의 스타트업 육성·협업 프로그램 'NH디지털 챌린지 플러스' 5기 선발 축하 행사에 직접 참석해 스타트업 관련자들을 격려했다. 이번 5기 총 27개 스타트업들의 특징은 '다양성'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디지털 분야에서부터 농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비디지털 부문까지 아우른다. 농협은행은 이들에게 입주공간 지원, 스타트업 경영진단, 법률·특허·인사노무·세무 상담기회 제공은 물론 범농협 사업연계, 투자유치 참여기회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 부행장은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금융권 최고 수준의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농협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스타트업과의 소통·협업으로 신규 사업 모델을 발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