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현호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지난 2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두번째 만나면서 70일간 4대 기업 총수들과 4차례나 릴레이 회동하는 등 경영보폭을 확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실적이 침체가 예상되면 최고경영자(CEO)들의 대외활동이 주춤한 모습과 대조적이다.
그룹의 2분기 흑자규모가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고된 가운데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연이은 회동을 통해 정 수석부회장이 위기의 현대차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사진=현대차]](http://www.fetv.co.kr/data/photos/20200730/art_15953786711073_628d95.png)
◆역대 최악 실적 예고된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는 23일, 컨퍼런스 콜을 통해 경영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차량판매가 부진해 흑자규모는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0조9479억원, 3192억원으로 예측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2.3%, 영업이익은 74.2% 감소하는 것으로 역대 최악 수준이다.
현대차는 크게 차량, 금융부문으로 사업영역이 나뉘어져 있는데 차량 부문의 매출 비중은 전체 사업 중 78%에 달해 자동차 판매량이 부진하면 수익 하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지난 2분기 전체 판매 비중이 80%에 달하는 해외 자동차 판매량이 폭락하면서 실적 참사는 사실상 결정된 상태다. 현대차의 지난해 동기대비 4월 자동차 판매량은 70.4% 떨어졌고 5월과 6월에도 각각 49.6%, 34.2% 줄어들었다. 김평모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판매 실적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2021년 도약 ‘원년’ 선언한 정의선 수석부회장, K-배터리 동맹 ‘주목’=실적 참사를 뒤로한 채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주목하는 시점은 2021년이다. 그는 지난 14일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내년에는 전기차 도약을 위한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모빌리티 시장이 친환경차로 변화가 예고된 만큼 정 수석부회장 선택에 따라 그룹의 사업 전략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건 현대차와 국내 배터리 3사의 K-배터리 동맹이다. 배터리를 필두로 EPCU(Electric Power Control Unit)와 구동모터는 전기차 부품에 핵심 삼각편대로 분류된다. 세 부품이 없다면 내연기관차와 차이가 없다. 그룹의 모듈(시스템화) 사업을 담당하는 현대모비스가 EPCU와 구동모터를 생산하지만 현대차는 배터리를 공급할 능력이 부족하다. 정 수석부회장이 배터리 3사인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의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과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 회장과 연이은 회동을 한 이유다.
블룸버그NEF는 전기차는 2040년까지 판매된 모든 승용차 중 58%, 전체 차량 판매의 31%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 수석부회장도 이에 발맞춰 2025년까지 23차종 이상의 전기차 출시해 100만대 이상의 판매와 점유율은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따라서 정 수석 부회장의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안정적인 배터리 확보는 필수적이다.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2024년, 배터리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전망한 만큼 K-배터리 동맹을 위해 합작사 설립 가능성도 농후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아직 배터리 합작사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 중국과 미국의 1위 자동차 회사인 지리자동차와 GM은 LG화학과, 독일 폭스바겐은 스웨덴 노스볼트, 미국 테슬라는 일본 파나소닉과 손을 잡고 각각 합작사를 설립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서는 정 수석부회장이 이 부회장과 회동을 위해 그룹의 연구개발 ‘심장’ 역할을 담당하는 남양연구소로 직접 초대한 만큼 현대차와 삼성SDI의 합작사 설립 가능성이 거론된다.
1996년 설립된 남양연구소는 국내 자동차 연구개발 시설로는 최대인 347만㎡ 규모를 자랑하며 1만4000여명의 연구 인력이 근무 중이다. 글로벌 시장에 출시되는 현대·기아차의 차종 개발과 성능향상을 위한 각종 실험도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의 미래 비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연구소로 평가되며 이 부회장은 기업 총수로는 최초로 방문했다.
삼성은 배터리 시장을 위한 각종 성과를 내고 있다. 삼성 SDI는 뛰어난 내구성과 낮은 제조원가가 장점으로 평가되는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가 생산하는 ‘파우치형 배터리’와 대조를 이룬다. 또 삼성종합기술연구원은 ‘꿈의 배터리’로 평가되는 전고체 배터리의 기술력을 세계 최초로 1회 충전 후 8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상태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 미디어 행사에서 PAV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http://www.fetv.co.kr/data/photos/20200730/art_15953786706655_1402b8.jpg)
◆현대차 ‘정의선’, 전기차 넘어 모빌리티까지 사업 협력 확대할까?=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 5월13일,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한 이유는 배터리 협력 차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2차 회동은 이를 넘어 현대차그룹의 모빌리티 분야로 확대돼 도심항공모빌리티와 로보틱스에 관한 논의도 있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미래에는 자동차가 50%, 개인용비행체(PAV)가 30%, 로보틱스가 20%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서비스를 주로 하는 회사로 변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모빌리티 사업 구축을 위해 지난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총괄본부장 출신인 신재원 부사장을 영입했고 UAM 사업부도 신설했다. 올해 초 CES에서는 UAM 청사진과 PAV를 공개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의 모빌리티 구상은 삼성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 부회장은 2018년,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전자장비부품에 180조원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으며 같은 해, 자동차용 반도체 프로세서와 이미지센서 브랜드까지 연달아 선보이며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CES에서는 5G 기반의 차랑용 디지털 콕핏도 공개했다. 차량용 디지털 콕핏은 운전석과 조수석에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로 작동하는 조정석을 지칭한다. 이는 현대차의 모빌리티 사업과 모두 연결이 가능한 영역이다.
지난 10일 이뤄진 만남에는 삼성의 반도체 ‘사령관’인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과 배터리 사업을 주도하는 황성우 삼성종합기술원장, 전영현 삼성SDI 사장이 이 부회장과 동행한 점이 눈길을 끈다. 재계에서는 이번 경영진과의 만남은 현대차와 삼성이 반도체 전장 부문 협력을 타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