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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책준 소송 ‘0건’의 의미…하나자산신탁은 무엇이 달랐나

[FETV=박원일 기자] 책임준공을 둘러싼 최근의 법원 판단은 신탁업계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다. ‘하루 지연도 책임’이라는 기준은 그간 관행처럼 여겨지던 약정의 무게를 바꿔 놓았다. 책임준공은 더 이상 문구상의 약속이 아니라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는 채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하나자산신탁은 책임준공 관련 소송 없이 흑자 기조를 이어가며 대비된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판결 이후 엇갈린 대응과 실적 흐름은 신탁사 경쟁의 기준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

 

책임준공 소송의 판결 전후 각 사의 대응은 엇갈렸다. 일부는 항소를 통해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고 일부는 수천억원대 원리금을 선지급하며 부담을 확정했다. 기한 도과 사업장이 늘고 충당금 적립이 확대되면서 자본 방어가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신탁사가 더 이상 단순 관리자가 아니라 사실상 위험을 인수하는 구조라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이 가운데 하나자산신탁의 실적 흐름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연간 순이익은 2021년 927억원에서 2024년 588억원으로 감소했지만 업황 급락을 감안하면 잘 방어한 셈이다. 지난해 잠정 순이익도 248억원을 기록했다. 4분기 들어 선제적으로 충당금을 쌓으면서 이익이 줄었지만 이는 위험을 미리 반영한 결과다. 무엇보다 모기업의 유상증자나 자본성 증권 인수 없이 버텨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차이는 사업 구조에서 비롯된다. 하나자산신탁은 2022년부터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비중을 줄이고 차입형 토지신탁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차입형은 일반적으로 하이리스크-하이리턴 구조로 분류되지만 분양성과 사업성이 검증된 사업장만 선별 수주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통제해 왔다.

 

수치도 이를 보여준다. 차입형 신규 수주액은 2021년 400억원대에서 2024년 700억원을 웃돌았고 수익 비중은 10%대에서 40% 수준으로 확대됐다. 2025년 1분기 기준으로는 60%를 넘어섰다.

 

책임준공형 사업은 PF 부실 발생 시 신탁계정대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고 우발채무 규모를 사전에 가늠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최근 잇따르는 손해배상 소송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반면 차입형 사업장은 선순위 회수 구조를 통해 자금 회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분양 정상화나 자산 매각이 이뤄질 경우 충당금 환입 가능성도 열려 있다. 위험을 완전히 피했다기보다 통제가능한 영역 안에 두려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의 성적표가 곧 장기적 우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경기, 미분양 추이, PF 시장의 유동성 환경은 여전히 변수다. 다만 책임준공 판결 이후 분명해진 한 가지는 신탁사의 경쟁 축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주 규모나 점유율이 아니라 어떤 위험을 선택했고 어떻게 관리해왔는지가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하나자산신탁의 선방은 그래서 한 회사의 실적을 넘어선다. 그것은 책임준공에 기대어 성장해온 신탁 산업이 이제 어떤 전략을 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판결은 진행 중이지만 구조에 대한 시장의 검증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