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나연지 기자] 정부가 자동차 관세 인하를 공식화했지만,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기아는 관세 효과보다 현장 리스크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조지아 합작공장의 공사 일정 지연, 비자 단속 이후 심화된 인력난, 시공 단가 상승 등이 겹치며 두 회사의 북미 전략은 관세 인하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할 만큼의 불확실성에 노출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번 관세 인하는 한미 양국이 14일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에 근거한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하면서, 현대차·기아가 수개월간 지켜봐 온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 다만 이 조치의 실질적 효과는 ‘11월 1일 소급 적용’ 여부에 달려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전략적투자업무협약(MOU)을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부터 소급 적용되는 법안이 마련돼 있다”며 “11월 제출 가능성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급 적용 여부는 현대차·기아의 비용 구조에 바로 반영되는 변수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의 관세 비용은 연간 최대 4조원 수준이지만, 15% 인하가 소급 적용될 경우 2조원 미만으로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계산은 소급 적용을 전제로 한 최적 시나리오다. 소급이 불발되면 현대차·기아는 월 3천억원 안팎의 관세 부담을 그대로 떠안게 된다. 업황이 둔화된 상황에서 이익률 방어가 중요한 만큼, 관세 변동은 실적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문제는 관세보다 현장 리스크가 더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합작공장은 미국 내 비자 단속 강화로 숙련 기술자 확보가 지연되면서 공사 일정이 최소 한 달 이상 밀린 상황이다. 인건비와 시공비도 급등해 일정 차질이 반복되고 있으며, 업계는 이를 단순한 공정 관리 실패가 아니라 “미국 내 제조 투자 전반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병목”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 현지 시공·기술직 인건비는 올해만 12~20%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비용 압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SDI 등 반도체·배터리 투자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주요 제조사들이 같은 기술 인력 풀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숙련 기술직의 공급 자체가 제한돼 있어 ‘레벨에 맞는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병목으로 지적된다. 이 영향으로 공장 시공 단가는 지난해 대비 두 자릿수 수준으로 상승했고, 일정 지연은 곧바로 추가 비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비용 압력은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의 인센티브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북미 생산 비중 확대는 현대차·기아의 핵심 전략이지만, 공장 완공이 늦어질수록 IRA 세액공제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시점도 함께 미뤄진다. 관세 인하로 절감되는 비용보다 현장 비용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내년 미국 시장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현장에서는 정책 변수와 노무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되는 양상이다. 산업계에서는 “관세 인하만으로는 현대차·기아의 북미 생산전환 속도를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경계론이 여전히 우세하다.
결국 이번 관세 인하는 현대차·기아가 안고 있던 불확실성을 일부 해소했을 뿐, 조지아 공사 기간 지연·인력난·단가 상승이라는 구조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미 전략의 비용 압박은 당분간 완화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