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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기의 고령화 이야기


고령자 친화적인 의료시스템이란?

 

 

 

의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숭이의 털 고르기에 도달한다고 한다. 유사 이래로 의료는 오랫동안 주술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인류는 ʻ사람ʼ이 되기 전부터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위로를 제공해 왔다. 이후 17세기 르네상스를 계기로 과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으면서 질환의 메커니즘이 밝혀지고 수많은 질환을 치료할 수 있게 된 역사를 거쳐 왔다.

 

그러나 그 결과 의료의 초점이 ʻ환자를 치료한다ʼ에서 ʻ질환을 치료한다ʼ로 옮겨졌다. 진화란 환경의 변화에 맞춰서 적응해나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라는 환경 격변에 직면해 있는 현재, 의료는 다시 한 번 진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기존의 질환 접근법을 소중히 하면서도 한 명의 사람인 환자에게 초점을 맞춰 가는 의료로 진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노인의학과는 그 진화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 모른다.

 

초고령사회인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미국 사회도 고령화가 진행 중에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노년증후군과 다양한 만성질환이 병존하는 고령 환자를 치료하는 노인의학과 의사(노년의학과 전문의 수)는 최근 10년간 증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감소 경향에 있고, 게다가 노년의학과 펠로우십 트레이닝(내과 전문의 수련 3년 혹은 가정의학과 전문의 3년 후에 선택하는 수련 과정)을 제공하는 프로그램 수는 미국 인구에 비해 증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노년의료 펠로우십 프로그램은 정원 미달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미국 펠로우십 매치(세부 전공 모집)에 10,778명이 응모, 8,753명이 채용되어 약 80%의 정원만이 채워진 점을 고려하면 노인의학과는 인기가 없는 과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직업의 이미지와 수입 면에서도 불리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더구나 고령자 진료의 복잡성이나 불확실성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인의학과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령자 진료를 피할 수 있을까? 초고령사회의 압도적인 환자층, 눈앞에 펼쳐지는 블루오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노년의학과 의사가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의사가 현재 방식의 노년의학과 연수 프로그램을 하지 않은 상태라면 미래의 고령자 진료에 필요한 건 다름 아닌 개인 차원과 조직 차원의 고령자 진료 전략일지 모른다.

 

개인 차원에서의 전략은 고령 환자에 관하여는 모든 의료진이 고령자 진료의 핵심을 아는 것, 그리고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숙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 명 한 명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가는 상관없이 고령자에게 흔한 건강 문제에 대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조금씩이라도 대응할 수 있다면 전체로서는 훌륭한 고령자 친화적 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차원의 변화만으로는 보다 나은 고령자 진료를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조직 차원의 변화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의료기관과 의료시스템은 고령자에게 친화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소음이 끊이질 않는 병실, 보행기로 다니기에는 좁은 화장실, 시력장애가 있는 고령자는 읽을 수 없는 작은 문자 표시, 의료종사자들의 노년증후군에 대한 지식 부족, 정기적으로 다니기에는 장애물이 많은 진료소 등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 의료 질 향상 연구소(Institute for Healthcare Improvement, IHI)가 중심이 되어 2017년에 제창한 것이 고령자 친화적인 케어(Age-friendly Care)이다. 이는 의료 내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의료 전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이다. 개인 차원에서 고령자 진료 레벨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조직적으로나 시스템적으로 고령자에게 보다 나은 의료를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뼈대 갖추기(frame work)이며 조직 차원에서의 고령자 진료 전략인 것이다.

 

IHI는 2030년 말까지 미국 의료기관의 30% 이상이 고령자 친화적인 케어를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정 프로세스도 있고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을 포함한 수많은 병원이나 의료기관이 고령자 친화적인 케어를 실천, 고령 친화적 의료 시스템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개선과 변혁을 추구하고 있다.

 

고령자 환자는 딱히 노년의학과 의사에게 진찰받고 싶어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보다 나은 의료를 받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언제 어느 곳이라도 찾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도는 모든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으로서도 환자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김형기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