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김선호 기자] “혁신 신약이 상용화되고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죠. 임상 단계에서 실패할 수도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새로운 분야로 나갈 수도 있겠죠. 그 기간 동안 투자금도 문제지만 R&D(연구개발)에 무엇보다 필요한 건 ‘헝그리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바이오벤처기업의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발표를 마치고 난 후 담화를 이어가며 자신이 그리는 청사진을 조심스레 설명했다.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임상 성공을 장담할 수만은 없는 R&D의 고충도 그 안에 녹아 있었다.
사실 기술특례 상장으로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고 바이오벤처 중 성공 사례로 꼽히는 기업의 대표가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화려한 이력에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았을 법한 그에게도 고달픈 시기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2025년에 헝그리 정신은 낡은 상자에서 꺼내든 옛 문서와도 같았다. 경제적 빈곤에서 생존을 위해 강인한 근성이 필요했던 1960년대. 그 시대에나 어울리는 말이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지금은 MZ세대가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헝그리 정신’과 ‘MZ세대’는 그가 승계를 우선 순위에 두고 있지 않는 이유였다. “혁신 신약 등 R&D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하지만 제 자식에게 그런 근성이 있다고 할 수 없겠죠”
유한양행의 렉라자 사례를 기반으로 신약 개발에 대략 1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유한양행도 2015년 기술을 이전받아 렉라자를 개발한 만큼 10년 그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한다.
그 기간을 견디며 투자를 유치하고 R&D에 집중해왔던 그 근성 덕분에 지금의 바이오산업이 있을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승계를 뒤로 하고 M&A(인수합병)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자금조달 능력이 우수한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국내 바이오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이를 위해 해외까지 레이더망을 펼쳐 R&D를 위한 인재를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그 기준 중 하나가 헝그리 정신이라고 한다. 그가 강조하는 헝그리 정신의 이면에는 R&D에 대한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연구에 집념을 가지고 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대와 출신을 넘어 저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며 “그리고 제가 지금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라면 승계보다는 M&A가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바이오주는 한때 주가가 급등하며 ‘거품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제는 그 거품이 사라지고 옥석가리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바이오벤처 기업을 지탱하는 정신은 무엇일까. 기자간담회에서 대표가 꺼내든 옛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