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산업과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정치적 혼돈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부흥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FETV는 업권별 현안과 과제를 점검하고 차기 정부에 바라는 규제 완화 요구 등을 들어보고자 한다. |
[FETV=신동현 기자] 게임 내 유료재화 거래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이 부여되는 현행 제도를 두고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사행성과 무관하게 기능 존재만으로 등급이 제한되면서,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보다 유연한 기준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게임물 등급분류 체계에서 유료재화 거래소가 포함된 게임은 자동으로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는다. 거래소 기능이 도박이나 사행심 조장 요소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기능의 실제 운영 방식이나 환금 가능성과 무관하게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있어 과도하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돼 왔다.
이러한 기준은 2018년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개정한 ‘사행행위 모사 기준’에 따라 만들어졌다. 당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게임 아이템 거래소 사이트를 모방한 형태의 게임 내 기능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법원도 이에 대해 일정 부분 정당성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 내 거래소가 실제 환전이 가능한 외부 사이트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이러한 규정이 과도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 규정은 한국만의 독자적인 기준으로, 해외 주요 국가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지난 1일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용역발주로 발간된 '게임물 등급 분류 기준 등 개선방안 연구용역'에 따르면 게임물 등급 분류 미국(ESRB), 유럽(PEGI), 일본(CERO) 등은 도박 또는 사행성 요소가 있을 경우에도 환금성 유무, 시뮬레이션의 사실성, 게임 내 맥락 등을 고려해 등급을 유연하게 적용한다.
미국은 실제 화폐가 사용되지 않는 도박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는 청소년 이용이 가능한 등급(T)을 부여하고 PEGI는 2020년부터 도박 콘텐츠가 포함된 경우에만 PEGI 18 등급을 적용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반면 한국은 거래소 기능 자체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등급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같은 게임이라도 국내외에서 완전히 다른 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브 온라인, 쓰론앤리버티, 로스트아크, 디아블로 이모탈 등 글로벌 게임들이 한국에서는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은 반면, 미국이나 유럽, 호주 등에서는 12세 또는 15세 이상의 등급을 받고 서비스되고 있다. 특히 이들 게임은 해외에서도 사행성 경고 문구가 부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준이 상대적으로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사들은 한국 출시를 위해 거래소 기능을 제거하거나 전략적으로 청불을 감수하고 론칭하는 등 이중적인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설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중소 게임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원화 전략이 큰 비용과 인력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개발 비용과 출시 일정은 불필요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글로벌 게임사의 경우 한국 시장을 외면하는 현상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도 유료재화 거래소에 대한 규제가 현행처럼 경직돼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과거 게임아이템 거래소 사이트가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전례가 있었고 이를 근거로 게임 내 유사 기능을 규제해 온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현재 게임 내 거래소 시스템이 당시의 거래소와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료재화 거래소가 존재한다고 해도 게임사가 자율적으로 청소년 보호조치를 마련할 수 있다면 사행성 유발 가능성은 크게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게임 내에서 일정 연령 이상만 거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 사용금액에는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도록 설정하는 등의 조치를 두는 것이다.
이러한 보호조치를 제도적으로 강제할 것인지 아니면 사업자의 자율적 선택에 맡길 것인지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강제가 오히려 또 다른 규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게임과몰입 예방조치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청소년의 결제정보 고지, 게임 이용시간 제한, 주의문구 게시 등은 이미 법제화돼 있기 때문에, 유료재화 거래소를 이유로 별도의 등급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중복 규제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거래소 기능이 포함된 게임은 환금성과 무관하게 청소년 이용불가로 분류되는 구조인데 특히 전통적인 MMORPG 장르에서 주로 나타난다”며 “실제로 동일한 게임이 해외에서는 일반 이용 등급을 받는 반면, 국내에서는 거래소 기능 하나만으로 청불 등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제도는 글로벌 기준과 괴리가 크고 국내에서는 해당 기능을 제거한 변형 버전을 따로 제작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며 “결국 한국 시장 진입을 포기하거나 게임의 핵심 재미 요소가 훼손되는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개인 간 거래는 시간 대신 비용을 지불하고 아이템을 얻으려는 유저 수요에 맞춘 시스템으로 이는 시장경제적 기능에 가깝다”며 “단지 거래소 기능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행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