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산업과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정치적 혼돈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부흥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FETV는 업권별 현안과 과제를 점검하고 차기 정부에 바라는 규제 완화 요구 등을 들어보고자 한다. |
[FETV=임종현 기자] 지방은행이 지역 경제 악화와 급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지역 금융의 공공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부산·광주·전북 등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금고 상당수를 시중은행이 운영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금고 선정 시 지방은행에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행정안전부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2025년도 지자체 금고 지정 현황'(총 307곳) 가운데 244곳을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기업·NH농협·iM뱅크)이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NH농협은행이 159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신한·iM·국민·우리·하나·기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시중은행이 담당하는 금고 수는 2020년 212곳에서 5년 만에 244곳으로 32곳 증가했다.
시중은행은 서울·수도권을 넘어 그간 지방은행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지방자치단체 금고까지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광주은행과 부산은행은 시금고 유치 경쟁에서 시중은행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각각 1금고 지위를 지켜냈다.
그러나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시중은행들이 거액의 출연금(협력사업비)을 무기로 지역 금고 확보에 나서면서 지방은행의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수성에 성공했지만 다음 경쟁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광주은행은 지난 50여 년간 유지해 온 조선대학교 주거래은행 지위를 지난해 7월 신한은행에 내줬다.
시중은행들은 시금고 입찰 전부터 지역 신용보증재단에 정책자금 출연금을 확대하는 등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실제 금고 지정 평가 항목에는 '지역사회 기여 및 시와의 협력사업'이 포함돼 있어 출연금은 평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시금고 신규 지정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이 수백억 원대 출연금을 내놓자 지방은행들도 어쩔 수 없이 출연금을 상향 조정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시중은행들이 이처럼 출연금 경쟁까지 감수하면서 지자체 금고 유치전에 뛰어드는 이유는 기관 자금을 저원가성 예금으로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하기관 등으로 영업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자체의 정책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부산은행 본점에서 열린 '지방지주 회장·은행장 간담회'에서 (앞줄 왼쪽부터)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 빈대인 BNK금융지주 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방성빈 부산은행장. (뒷줄 왼쪽부터) 박충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예경탁 경남은행장, 황병우 대구은행장, 백종일 전북은행장, 고병일 광주은행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금융감독원]](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520/art_17472011835948_20cd2d.jpg)
지난해 4월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은행 본점에서 열린 '지방지주회장·은행장 간담회'에서 지방금융지주 회장들과 지방은행장들은 금융당국에 시금고 유치를 둘러싼 과당경쟁 실태를 호소했다. 지자체와 지역 대표 기관이 금고를 선정할 때 출연금 규모만이 아닌 은행의 지역 재투자 실적 등 실질적인 기여도를 평가 기준에 반영해달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지방소멸 위기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방은행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지난달 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주최, 금융경제연구소 주관으로 '2025년 제1차 금융노동포럼'이 열렸다. 주제는 '지역경제의 위기와 지방은행의 역할'이었다.
발제를 맡은 이상원 동아대학교 금융학과 교수는 지방자지단체의 금고은행을 지방은행으로 지정하는 것을 법제화하고 지역 밀착형 영업 전략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등 지역재투자 평가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광주은행 지부 위원장은 “정부는 지방은행에 합당한 제도적 우대를 마련해야 한다"라며 "지방은행은 지역사업에 능동적으로 기여하고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은행 한 관계자는 "당국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시중은행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구호에 그치지 말고 지방은행 육성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