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산업과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정치적 혼돈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부흥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FETV는 업권별 현안과 과제를 점검하고 차기 정부에 바라는 규제 완화 요구 등을 들어보고자 한다. |
[FETV=임종현 기자] 최근 금융권에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여러 시중은행과 제휴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행 '1거래소-1은행' 체제는 거래소 당 하나의 은행과만 실명계좌 연계를 허용해 은행 간 경쟁을 제한하고 거래소의 금융 접근성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5곳(▲업비트-케이뱅크 ▲빗썸-KB국민은행 ▲코인원-카카오뱅크 ▲코빗-신한은행 ▲고팍스-전북은행)은 은행과 제휴를 맺고 실명계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2021년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 이후 원화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래소는 은행과 제휴해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를 발급받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실명계좌를 통해 거래자 신원을 확인하고 자금세탁 등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당시 거래소들이 은행과 제휴를 맺는 과정에서 1거래소-1은행 체제가 관행으로 굳어졌다. 은행 한 곳이 실명계좌 발급과 함께 자금세탁 방지 등 내부통제 역할까지 전담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이다.
금융권에서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에는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허용되면서 아직 거래소와 제휴를 맺지 못한 시중은행들도 새로운 사업 기회로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제휴를 통해 신규 고객 유치와 저원가성 예금 유입이 증가하는 등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정진완 우리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이환주 KB국민은행장, 백종일 전북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앞줄 왼쪽부터) 이은미 토스뱅크 대표, 김재섭 의원, 유영하 의원, 이헌승 의원,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윤한홍 의원, 강민국 의원이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국민의힘]](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520/art_17471144941198_5cfedc.png)
앞서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민생경제 및 은행권 경쟁력 제고 간담회' 자리에서 관련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주요 시중은행장들과 국민의힘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참석했다. 은행장들은 정치권에 가상자산 거래소가 다수 은행과 제휴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현행 체제는 시스템 안정성 측면의 리스크는 물론 소비자 선택권 제한과 법인 고객의 이용 제약 등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도 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가상자산 관련 1은행-1거래소 전속 제휴 제한 폐지 요구에 대한 질문에 "일부 가상자산사업자의 독과점 우려, 자금세탁 리스크 문제를 살펴보고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정당들도 가상자산 공약으로 1거래소 1은행 폐기 등 규제 해소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 거래소와 제휴는 단순히 수익성 측면을 넘어서 시중은행의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와 새로운 금융환경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며 "법·제도 완화 흐름에 따라 법인의 수탁 거래도 가능해질 전망인데 이 경우 가상자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은행과 그렇지 못한 은행 간 차별화가 불가피해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휴를 통해 저원가성 예금 유치, 고객 기반 확대는 물론 가상자산 관련 신기술이나 신규 금융서비스에 대한 이해와 시너지도 함께 쌓을 수 있다"면서 "지금은 단순한 수익 문제가 아니라 금융산업 전반의 경쟁력 확보와 관련된 전략적 판단의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가상자산 거래소 역시 1거래소-다자은행 체제 전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은행과의 제휴가 가능해지면 이용자가 특정 은행 계좌를 반드시 보유해야만 거래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존의 제약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신중한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비트와 케이뱅크처럼 이미 제휴를 맺고 있는 대형 거래소가 다른 시중은행과도 연계할 경우 시장 점유율이 더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부 중소 거래소는 법인 고객 확대를 계기로 점유율 개선을 기대하고 있지만 다자 제휴가 오히려 대형 거래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경우 시장 내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휴 선택권이 은행 측에 있는 만큼 은행들이 자금력이나 인지도 면에서 우위에 있는 대형 거래소와의 협업에 집중할 가능성도 높다. 이 경우 소형 거래소들은 오히려 제휴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우려도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은행과의 제휴가 투자자 편의성과 금융 연계를 높이는 긍정적 방향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시장 내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입 시기와 방식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