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사진 Pexel]](http://www.fetv.co.kr/data/photos/20241201/art_17355218055723_788d53.jpg)
[FETV=양대규 기자] '계엄' 이후 불안정한 국내 정세에 원·달러 환율이 최근 1486원을 넘었다. 15년 9개월만에 최고치다. 전문가들은 국정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단기적으로 환율이 1500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에 국내 주요 기업들이 고환율로 인해 내년 사업 계획 구상에 고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 상승에 의한 매출 증대 효과가 수입물가, 해외 투자 비용 상승으로 인한 지출 증가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30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국내 주요 수출 기업들이 환율 상승으로 인한 셈법에 골머리를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의 제품을 달러로 판매한 뒤 원화로 환산하면 수익이 늘어나서 수출 기업에 호재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 기업의 해외 현지 투자와 생산이 늘어나고, 원자재 수입 가격이 상승하면서 비용 부담이 더욱 증가했다.
김태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 변동이 국내 제조업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실질실효 환율이 10%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하면 대규모기업집단의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 하락한다"며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규모기업집단의 수출 전략이 가격경쟁에서 기술경쟁으로 변하면서 원화가치 하락 시 매출 증대효과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환율 상승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로 영업 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당장은 제품을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수입하는 웨이퍼나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익성을 저하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 강달러 추세가 지속돼면 시설 투자와 장비·설비 반입 비용이 많이 늘어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에 440억달러를 투자하며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한다. 최근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에 47억4500만달러, SK하이닉스에 4억5800만달러의 직접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보조금을 제외한 양사의 투자금은 각각 약 392억달러와 34억달러다.
단순 계산으로 원·달러 환율이 1원 오를때마다 삼성전자는 392억원, 34억원의 비용이 증가한다. 원·달러 환율은 계엄 직전인 12월 초 1400원대였다. 하지만 불과 한달도 안된 사이 약 70원이 증가했다.
환율 변화로 삼성전자는 약 2조7000억원, SK하이닉스는 2400억원의 투자금이 더 증가한 셈이다.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 공장 건설 현장 모습. [사진 경계현 삼성전자 전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http://www.fetv.co.kr/data/photos/20241201/art_17355219195358_8fd59f.jpg)
원자재 가격 상승도 문제다.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에 사용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는 DX부문 전체 원재료 매입의 17.7%를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AP 매입에 2021년 7조6300억원에서 2022년 11조3800억원, 2023년 11조7320억원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도 3분기까지 누적 8억7051억원을 기록 중이다.
최근 퀄컴은 갤럭시 S25시리즈에 탑재하는 스냅드래곤 8 엘리트의 가격을 전작 대비 30% 가까이 올렸다. 여기에 환율 상승 효과까지 더하면 부담이 더욱 커지는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예전에는 국내 생산 비중이 높아 원·달러 환율 상승 시 달러로 결제되는 외화 매출 덕분에 수혜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 등 해외 생산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면서 환율 수혜가 크지 않다. 부품, 원자재 비용과 현지 마케팅 비용 등의 상승분을 더하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LG전자도 3분기 에어컨·냉장고의 열교환기에 들어가는 구리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칩 가격이 각각 6.9%, 10.6% 상승하면서 원재료 비용 부담이 높아졌다. 여기에 해상으로 제품을 운반하는 데 드는 물류비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환율 상승 압박이 커지면서 물류비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KB증권은 최근 삼성전자의 올해와 내년 영업이익을 기본 예측 대비 각각 4.8%, 16.5% 내린 34조 1000억원, 36조 1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의 4분기 전망치도 7조7742억원으로 지난 10-11월 영업이익 컨센서스에 비해 4.2%가량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최대 실적이 예상되는 자동차 업계도 ‘피크아웃(정점 이른 후 하락)’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대내외 경기 부진 속에 북미 등 주요 수출 시장의 재고 증가에 따라 수출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도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계엄 이후 국내 정세의 불안정성 때문에 환율이 1500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DI는 "3~4%의 환율 변동은 통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바, 원·달러 환율의 1500원 도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7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86.7원을 기록했다. 15년 9개월만의 최고치다.
KDI는 최근 환율이 '우리 경제의 부정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대외적 요인으로 움직이던 환율이 3일 불법 계엄 사태 이후 기존 흐름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원화 가치를 떨어트려 환율을 더 끌어올렸다는 의미다.
재계 관계자는 "환율의 상승으로 사업부문에 따라서 일부 좋은 실적을 보여줄 가능성은 있지만 요즘 한국 기업들에 마냥 호재는 아니다"며 "환율 상승 효과는 환율이 안정되면 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