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원본 사진 엔비디아]](http://www.fetv.co.kr/data/photos/20241251/art_17345697385273_80ed5b.jpg)
다사다난한 2024년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해 초 22대 총선이 진행됐고 하반기에는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미국을 포함해 50여 국가에서 선거가 진행됐고, 유럽과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는 지속된 한 해였다. 올해 말미에는 계엄·탄핵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이슈 속에서 올 한해 우리 산업계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FETV 편집국이 짚어보았다. <편집자주>
[FETV=양대규 기자] 올해 한국 반도체 시장은 미국 엔비디아의 선택에 따라 희비가 교차됐다. 인공지능(AI) 전용 가속기를 바탕으로 전 세계 시가총액 1위까지 기록한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채택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바뀌게 된 것이다.
여기에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은 DDR4 D램(DRAM)과 낸드플래시(NAND Flash) 등 일부 레거시 마켓에서 저가 공세를 퍼부으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을 약화시켰다.
엔비디아와 손을 잡고 HBM의 매출 비중을 높인 SK하이닉스는 국내 1위이자 글로벌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실적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체질개선을 하지 않으면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뺏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실제로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에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DS부문보다 3조원 이상 앞섰다. 상반기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은 8조3600억원, SK하이닉스는 8조3545억원으로 삼성전자 DS부문이 다소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3분기 HBM3E라는 고성능 AI용 메모리 반도체의 성패에 따라 삼성전자 DS부문 12조2200억원, SK하이닉스는 15조3845억원의 영업익을 거두면서 SK하이닉스가 역전을 한 것이다.
SK하이닉스가 이렇게 높은 영업이익을 거둔 데는 HBM의 앞선 기술력과 함께 고객사인 엔비디아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초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 AI 서밋 2024' 행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공동창업자 겸 CEO와의 일화를 밝히며 양사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내가 만난 젠슨 황 CEO는 뼛속까지 엔지니어"라며 "한국사람같이 '빨리빨리', 상당히 스피드를 강조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만날 때마다 저희 쪽에 빨리해 내라는 요구를 항상 한다"며 "아마 모든 사람과 만날 때마다 '좀 더 빨리할 수 없냐'라는 것이 일반적인 첫번째 질문일 것"이라고 농담조로 덧붙였다.
이에 대한 한 사례로 5세대 HBM3E의 다음 제품인 6세대 HBM4 공급과 관련해, 최 회장은 "(젠슨 황을) 지난번에 만났을 때, HBM4 공급은 예정된 스케줄로 약속이 다 끝나있는 상황인데, '당겨달라'고 말했다"며, "얼마를 당겨야 하는지 물어보니 '6개월을 당겨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라인 [사진 FETV DB]](http://www.fetv.co.kr/data/photos/20241251/art_17345704127549_c780ee.jpg)
이어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를 쳐다보고 '이거 할 수 있냐'라고 물었더니 (곽 CEO가) '한 번 해보겠다'고 답했다"며 "그래서 6개월을 당겨보기로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HBM4 제품을 내년부터 양산하겠다고 지난 4월 밝혔다. 기존 계획은 2026년었으나 이를 1년 가까이 앞당긴 셈이다. 이런 양산 일정 수정의 결과가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의 강한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젠슨 황 CEO 역시 이런 SK하이닉스와의 관계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젠슨 황은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파트너십은 그 동안 우리가 해온 일들을 혁신해 왔다"며 "양사가 함께한 HBM 메모리 덕분에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는 진보를 지속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3E 공급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올해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최근 상황에 미루어 연내 공급은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초ㅚ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와 일부 외신들은 삼성전자가 HBM 5세대 제품 'HBM3E'의 엔비디아 공급을 올해 안에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엔비디아의 퀄테스트(품질검증)에서 삼성전자의 제품이 HBM 성능 표준을 계속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다.
또한 엔비디아에 HBM3E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활용하며 엔비디아의 HBM 통과 기준이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SK하이닉스가 대량 공급을 통해 고성능 HBM의 성능을 좌우할 패키징 공정에서 안정화하고 있는 반면, 본격적인 공급을 하지 못한 삼성전자에게 엔비디아의 문턱은 더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HBM3E의 주요 고객사 품질 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확보,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전망"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퀄테스트 통과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트럼프발 공급망 불안과 6세대 제품 'HBM4' 출시로 인한 시장 변동 등이 예상된다. 중국의 메모리 산업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어서 삼성전자는 큰 손인 엔비디아에 빠르게 HBM3를 공급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1년간 D램, 낸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모두 하락했다. 지난해 말 시장이 기대했던 슈퍼사이클은 없었다.
지난해 글로벌 3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이 모두 감산하며 가격을 조정하며 업계는 다시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기대했다. 하지만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기업인 창신메모리(CXMT)와 푸젠진화(JHICC)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DDR4 D램을 양산하고 0.75~1달러에 공급하며 전체 시장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사진 연합뉴스]](http://www.fetv.co.kr/data/photos/20241251/art_1734570588777_16a7b7.jpg)
결국 값싼 D램의 양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 대한 점유율 확대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생산 능력 확대는 업황에 연동되는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점과 레거시 수요 부진이 맞물리고 있는 상황에서 D램 3 사는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진행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실적 관점에서 레거시 출하 지양, HBM 등프리미엄 제품 출하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메모리 시장 내 중국 기업들의 비중은 2025년 말 두 자릿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기술 격차가 다소 적은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낮은 단가에 많은 물량을 쏟아내는 전략을 활용한다면, 점유율은 올리면서 단가 경쟁에서 선두 업체들을 제칠 수 있다는 의견이 확대된다"고 설명했다.
레거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앞으로 중국이 독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직 중국 기업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DDR5와 HBM으로 수익성을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발표에서 HBM 매출 비중이 전체 메모리 매출의 30%까지 올랐으며 전체 실적의 57%가 HBM에서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레거시 반도체의 비중을 최대한 줄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했듯이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도 여전히 돈독하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비해서는 아직 불리한 상황이다. 10월 컨퍼런스콜에서 HBM3E 8·12단을 양산하고 판매 중이라고 언급했지만,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에 납품을 한다는 공식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레거시 반도체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아직 SK하이닉스만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