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스스로를 ‘쓸모인간’이라 부르는 한 사람을 만났다. ‘가회동 집사 빈센트’라고도 불리는 이 68세의 남자는 필요한 물건을 손수 만들고 집을 아름답게 가꾸는 재주와 능력으로 ‘집사’의 삶을 자처하며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자신의 쓸모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쓸모있게 나이들어 가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여기저기 매스컴도 타며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었다.
당시 한 고객사의 사회공헌(CSR) 캠페인으로 고민하던 나는 이러한 빈센트의 삶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함께 프로젝트를 도모하고자 그가 살고 있는 가회동 집을 방문했다. 아름답고 재미난 그의 집과 삶을 보며 그 당시 어렴풋이 내가 이해했던 ‘쓸모있게 나이들기’란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기능과 효용성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기능과 효용성은 생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이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며 빈센트가 말한 쓸모있게 나이드는 것이 단순히 기능적인 효용성을 갖추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니 기능적인 효용성을 갖춘다는 것의 진짜 숨겨진 의미를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빈센트는 그의 까다로운 레서피 때문에 고전하는 동네 정육점 사장님에게 그가 만든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달려가고, 견고하고 정밀한 장식장을 마련해준 을지로 뒷골목 기름밥 장인들을 집에 초대한다.
집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집을 즐기지는 못하는 요즘 사람들과 달리 그의 집은 나누기 위해 공들여 꾸며졌고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며 그의 삶은 따뜻하고 풍요롭게 채워지고 있었다. 즉 쓸모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가꾸는 그의 행위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기 위한 도구이자 매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쓸모있게 나이들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쓸모인간으로 살기 위한 충분조건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 세상과의 관계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365살까지 살겠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쓸모를 가꾸고 공유하며 나이가 들어도 나이들지 않는 삶의 활력을 스스로에게 불어넣고 있었다.
우리나라 평균 퇴직나이가 49.3세라는 보도가 있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퇴직을 했다거나 파산이나 개인회생 신청을 한다는 지인들의 무거운 소식도 종종 들린다. 누군가는 방황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도모하며 '인생 2막'을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오늘도 길고 지루한 긴 하루를 맞이한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건 우리의 쓸모를 잃지 않고 효과적으로 오래도록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자신과 세상과의 관계성을 유지, 강화하려는 노력이다. 비단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까지 끌고 오지 않더라도 가족, 친구, 직장, 사회에서의 관계와 서로 주고 받는 영향력은 개인의 정서적, 경제적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치고 결국 우리 스스로의 쓸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얼마 전 오랜 만에 빈센트의 아내와 통화하며 근황을 전해들었다. 이제 빈센트는 가회동을 떠나 전남 구례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 가회동에서 그랬듯 구례에서도 빈센트는 새로운 만남과 관계를 위해 빵을 굽고 집을 가꾸며 자신의 쓸모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다. 선선한 가을날 그를 만나러 구례에 가봐야겠다. 그간 무뎌진 나의 쓸모를 다시 갈고 닦기 위해.
임현정 무버먼한국 & 꺼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