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권지현 기자] "저는 대우증권 출신입니다."
기업은 사라져도 인재는 남는다. '출신=능력'을 증명하는 곳, 대우증권 이야기다. 대우증권은 1970년 증시 초창기 문을 연 증권업계의 맏형으로, 모태인 동양증권이 1973년 대우그룹에 편입되면서 대우 일원이 됐다. 10년 뒤 삼보증권을 합병하며 '대우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97년 외환 위기 전까지 14년간 '1등 증권사' 타이틀을 뺏기지 않았다.
대우증권은 2016년 미래에셋증권에 합병된 이후 2021년 미래에셋대우에서 '대우' 간판을 완전히 내리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인재로 손꼽히던 대우맨들은 여전히 금융권 곳곳을 누비고 있다. 연말연초 인사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선임·연임되거나 재직 중인 인물만 10명에 달한다.
최근 인터넷전문은행 토스뱅크 새 대표에 내정되며 국내 네 번째 여성 은행장 탄생을 예고한 이은미 DGB대구은행 전 경영기획본부장(상무)은 대우증권에서 애널리스트를 지냈다. 2006년 1월부터 2007년 2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때 이력은 스탠다드차타드 금융지주로 자리를 옮기는 밑거름이 됐다. 도이치은행 서울지점 최고재무책임자(CFO), HSBC 홍콩지역본부 아시아태평양 지역총괄(16개국) CFO 등을 지냈다. '애널리스트의 교과서'라 불린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들은 대다수가 증권사의 꽃 '리서치센터' 수장을 꿰찼으나, 이은미 내정자는 이 때를 기점으로 은행권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종합금융 차기 대표 내정자인 남기천 우리자산운용 대표 역시 대우맨이다. 대우증권에 입사해 고유자산운용본부장과 대체투자본부장 등을 지냈다. 이후 멀티에셋자산운용을 거쳐 지난해 3월 우리자산운용 대표를 맡았다. 우리금융그룹이 여의도 증권가에서 잔뼈가 굵은 남 대표를 우리종금 수장에 낙점하면서 그룹 내 그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우리금융은 한국포스증권 인수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최종 성사될 경우 우리금융은 우리종금과 포스증권을 합병해 사실상 중대형 증권사처럼 운영한다는 복안이다. 마침 우리종금은 오는 4월 서울 중구 소공로에서 여의도 증권가로 사옥도 이전한다.
키움증권은 이달 초 대우맨을 CEO로 맞았다. 엄주성 신임 대표이사는 1993년 대우증권 주식인수부에서 증권업과 인연을 맺었다. 2007년 키움증권으로 옮겨 자기자본투자(PI) 팀장, 투자운용본부장(전무), 전략기획본부장(부사장) 등을 지냈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라덕연 사태' '영풍제지 사태' 등 두 번의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창사 20여년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셈인데, 32년차 베테랑 증권맨인 엄 대표가 대우증권 1등 DNA를 키움증권에 뿌리내릴 지 주목된다.
재직 중인 인사 중에선 김상태 신한투자증권(옛 신한금융투자) 대표가 대우증권 출신 정통 증권맨이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한 후 통합 미래에셋증권 IB(투자은행) 총괄 사장을 지낸 뒤 2022년 신한금융투자 GIB(글로벌·투자은행) 총괄 각자대표 사장이 됐다. 지난 연말 연임에 성공, 2025년까지 회사를 이끌게 됐다. 'IB 명가' 대우증권 출신답게 그는 취임 후 전통 IB 분야 성과를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 연초에도 부채자본시장(DCM) 부문에서 약진, KB증권을 제치고 1월 DCM 주관금액 3위로 올라섰다.
대우증권과 합병하며 몸집을 키운 미래에셋증권에도 대우맨이 있다. 지난해 연말 허선호 부회장을 신임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 사실상 '첫 대우증권 출신 CEO' 타이틀을 줬다. 앞서 2016년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 합병 직후 당시 홍성국 대우증권 전 사장이 잠시 각자대표를 맡은 적은 있지만, 그해 말 교체됐다. 작년 10월 선임된 강성범 미래에셋증권 IB1부문 대표도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 합병 전 대우증권에서 기업투자금융본부장을 하며 IB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외 최근 4연임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황준호 다올투자증권 대표, 유상호한국투자증권 수석 부회장,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또한 대우맨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