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최명진 기자] 해외에서 촉발된 인력감축 바람이 국내 게임 및 IT업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라인게임즈는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출시 한달도 안된 시점에 창세기전 콘솔 개발팀을 해체했다. 엔씨소프트도 자회사 엔트리브의 폐업을 결정하면서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게임업체를 포함한 IT기업들의 감원 칼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서 단행된 IT분야 해고된 인력은 24만명 이상이다. 특히 작년 10월까지 누적 수치는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진행된 정리해고 총량과 맞먹는 규모다.
지난해 1월 12000명에 달하는 인력을 해고했던 구글은 지난 10일 어시스턴트 프로그램과 하드웨어를 담당하는 직원 등 여러 사업 부문에서 수백명 규모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아마존은 프라임 비디오와 아마존 MGM 스튜디오에서 대규모 정리해고를 예고했다. 또 아마존 자회사 트위치의 경우 500명 이상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공식화했다. 댄 클랜시 트위치 최고경영자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트위치 전체에서 500명이 넘는 인력을 감축하는 고통스러운 단계를 밟게돼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앞서 트위치는 지난 12월 한국시장 철수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IT 업계의 인력감축 바람은 글로벌 게임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 11월 기준 65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중소 규모 게임 개발사의 사정까지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이를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다. 인력감축 바람은 한국 게임업계에도 피해갈 수 없었다. 라인게임즈는 '창세기전:회색의 잔영'을 개발한 자회사 레그스튜디오의 개발팀을 해체하기로 했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이 발매된 지 약 3주 만에 개발팀이 해체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의 판매 부진이 개발팀의 해체까지 이어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라인게임즈는 인력 일부를 미어캣게임즈로 이동하는 것을 협의중이다. 레그스튜디오 법인 정리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향후 창세기전 IP의 운영과 관리는 미어캣게임즈가 맡게 됐다.
엔씨소프트 또한 2월 15일 자로 자회사 엔트리브소프트의 폐업을 결정하고 소속 직원 70여 명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엔트리브는 2003년 국내 게임사 손노리가 설립한 개발사로 약 20년간 팡야, 트릭스터, 엘리샤 등 걸출한 명작을 배출한 장수 게임사다. 2012년 2월 엔씨소프트가 SK텔레콤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하면서 자회사로 편입됐지만 1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번 폐업결정은 엔씨소프트의 조직개편·비용구조 절감 기조에 따른 결정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엔트리브가 개발·운영하던 트릭스터M과 프로야구H2·H3도 오는 3월13일 부로 서비스 종료될 예정이다. 갑작스러운 폐업과 서비스 종료 소식에 혼란스러운 이용자들을 위해 엔씨소프트는 12월 1일 0시부터 5일 자정까지 구매한 모든 유료 상품에 대해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일괄 환불을 결정하기도 했다.
중소 게임업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울워커'를 제작한 개발·유통사 라이언게임즈는 지난달 개발진 60여명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소울워커는 한때 동시 접속자 수가 3만명을 넘고 타 게임의 논란속에 홀로 살아남아 이용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게임이다. 업계에서는 소울워커의 노후화와 신작 부재가 장기간 이어진 결과로 보고 있다. 소울워커는 향후 게임 운영사 밸로프로 이관될 예정이다.
IT업계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구조조정 바람이 거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한국 게임업계는 사업 효율화에 주력하고 있다”며, “사업성이나 흥행 가능성이 불투명한 프로젝트는 가차없이 중단되는 추세다. 이에 많은 개발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