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2012년 73.5등 vs 2022년 73등
KB·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지주가 글로벌 순위 평균 73등을 기록, 10년 새 0.5등 올랐다. 자본금과 이익잉여금, 신종자본증권 등 은행의 실질 자본 건전성 지표인 기본자기자본 기준으로 기록한 성적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순위 상승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른 산업군과 비교해 은행 경쟁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은행지주와 금융당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외쳐왔지만 결론적으로 10년 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영국 금융 전문지 '더 뱅커'가 지난해 실적을 집계해 공개한 '글로벌 은행' 순위에서 KB금융(국민은행)은 기본자기자본 기준 355억달러(약 47조원)로 60위를 차지했다. 신한금융(342억달러)과 하나금융(277억달러)은 각각 63위, 76위였으며, 우리금융(221억달러)은 93위에 자리했다. 1년 전보다 2~3등 오르내린 것으로, 이들 4대 은행지주의 평균 순위는 73등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어떨까. KB금융은 2012년 말 68등을 기록, 10년 동안 여덟 계단 상승했다. 자산·순익 기준 국내 1등 은행지주로 연순익 4조원 시대를 열고 반기 순익 3조원에 육박한 KB금융이지만 '글로벌' 잣대를 들이댄 등수는 10년 전과 동일하게 여전히 60위권인 것이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각각 73등, 81등으로 10년새 10등, 5등 올랐다. 반면 우리금융은 72등에서 93등으로 21등이나 뒷걸음질 쳤다. 기본자본 기준 2012년 말 4대 은행지주의 평균 글로벌 등수는 73.5등이었다.
10년 새 0.5등 상승한 것으로, 4대 금융이 지난 몇년 간 국내서 '사상 최대 실적'을 써왔지만 의미있는 글로벌 경쟁력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외 진출을 등한시하고 안방에 편하게 앉아 이자이익에 집중한 금융사들과 장기적인 큰 그림 보다 현안 해결에만 치중해온 금융당국의 문제가 겹쳐진 결과로 보고 있다.
현재 4대 금융의 해외 진출은 오랜 기간 베트남·인도네시아·캄보디아·미얀마 등 동남아 시장에 편중돼 있다. 반면 미국·유럽 등 이른바 선진시장은 10년째 '개척' 수준에 큰 변화가 없다. 해외 각국이 취하고 있는 금융 규제의 벽 탓에 우리나라 금융사의 해외 진출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서 몸집을 크게 불린 은행지주가 도전을 머뭇거리고 있다는 지적 역시 피할 수 없다. 국민은행은 현재 미국(뉴욕)·영국(런던)·일본(도쿄)·싱가포르에 각각 1개 지점만을 두고 있는데, 외환은행과 합병한 하나은행만 미국과 캐나다·독일 등에 현지법인을 세웠을 뿐, 국내 다른 대형은행들은 별반 차이가 없다.
금융사 한 고위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의 해외 진출이 쉽지 않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금부터라도 선진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의 성과주의가 강하게 작용하다 보니 이들이 임기 내 도전을 꺼리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지주 덩치가 커질수록 '공무원화' 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하는데, 당장 (선진시장 진출에) 큰 고민이 된다면 캐피털사 같은 파이낸스 컴퍼니로 큰 시장 문을 두드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 4대 금융그룹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현대캐피탈은 미국, 캐나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북미와 유럽 등에서 네트워크와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법인 현대캐피탈 아메리카(HCA)는 자동차 할부금융 등으로 상품자산이 2021년 말 467억달러에서 올해 1분기 말에는 495억달러로 늘었다. 영국 법인(HCUK) 역시 상품자산 규모가 2021년 27억파운드에서 지난 3월 말 기준 33억파운드를 기록했다. 웬만한 시중은행보다도 낫다.
당국이 큰 그림 없이 현안에 매달린 영향도 크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금융산업의 장기적인 그림을 그려야 할 감독당국이 저축은행 사태처럼 눈앞의 사안 처리에만 집중하다 보니 금융지주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은 논의에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업계가 당국이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도울 수 있는 연기금 활용 방법을 제대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할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금융사들은 국민연금 등이 지렛대 역할을 해 자금 지원에 나서면 국내 기업은 물론 연기금·금융사까지 이익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지난달 29일 열린 은행연합회 '은행산업의 역할과 수익성' 세미나에서 박창옥 은행연 상무는 "뱅커지 기준 세계 50위 안에 속하는 금융그룹이 한 곳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 4대 은행지주의 글로벌 순위 평균도 지난 10년간 평균 70위권대 수준"이라며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해외진출시 외국계 금융사에만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은행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 은행들이 자금력이 중시되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거대 글로벌 은행에 견줄 만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에서의 자금조달 능력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