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박제성 기자] 고려아연이 지난 26일 K-배터리 산업의 현황과 미래 대응 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소통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배터리 산업이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잠재 이슈를 파악하고, 국내 2차 배터리 및 소재산업 육성에 필요한 정책적 대응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려아연 지속가능경영위원회 정무경 위원장 주관으로 개최된 이번 전문가 소통 포럼에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용필 산업통상자원부 첨단산업정책관, 산업연구원 등 국회, 정부 및 유관기관, 학계, 언론계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K-배터리 산업계가 직면한 현황을 다층적으로 진단, 배터리 산업 증진을 위한 업계의 실질적 니즈를 청취한 한편, 정부의 세제 혜택 및 보조금 등 보다 실효성 있는 산업 지원책에 대해 논의했다.
‘글로벌 배터리 산업 공급망 이슈와 K-배터리 산업 대응 방안’으로 주제 발표를 맡은 장사범 고려아연 신소재사업본부 부사장은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유럽 CRMA(핵심원자재법)에 대응해 우리나라도 배터리 소재 분야의 대중(對中) 의존도를 낮춰 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 부사장은 “대중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쓰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구체를 비롯해 배터리 소재의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실정”이라며 “양극재와 전구체 생산 이전 단계인 니켈 제련에서부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현재 고려아연은 탄소배출이 적은 친환경 니켈 제련 기술을 개발한 상태로 2026년까지 4만 톤의 고순도 니켈을 국내 생산해 배터리 소재 밸류체인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장 부사장은 “고려아연은 고도의 제련 기술을 바탕으로 니켈 제련은 물론, 배터리 리사이클링, 전구체 및 동박 제조까지 배터리 소재 대부분을 공급할 수 있는 밸류체인을 구축한 상태”라며 “니켈부터 전구체, 양극재로 이어지는 K-배터리 생태계의 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2차 배터리 산업 증진을 위한 방안’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최장욱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도 글로벌 광물 확보 동맹 결성 등 공급망 강화와 더불어 탄탄한 밸류체인을 기반으로 한 친환경 광물 제련 기술을 강조했다. 특히 고려아연이 주도하는 친환경 니켈 제련 기술은 중국에 대한 비교 우위를 점하고 탄소 감축을 강조하는 글로벌 정책 방향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그동안 중국이 압도적으로 제련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국 내에 환경 규제가 없었던 덕분이었을 텐데 미국이 IRA로 그 점을 공략했다”고 말했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2차 배터리를 만들어서 전기차에 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앞 단계인 광물 제련에서부터 배터리 소재 원료를 잘 확보해야 미국 IRA에 대응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 “최근 정부가 K-배터리 공급망을 점검해 각 기업들도 광산 사업에 나서는 것처럼 정부와 산업계가 꾸준히 협력한다면 글로벌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중국은 차세대 배터리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갖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배터리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산·관·학 연계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기업과 정부 간 연계와 협력이 잘 이뤄져 차세대 배터리 기술 산업화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최근 미래차를 포함해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투자하는 대기업들에게 세액공제를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막상 법안을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혜택은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전기차 생산시설을 지어도 세액공제가 최대 3%에 불과한 수준이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기업들이 사업을 펼치고 싶어할 환경을 만들어야 2차 배터리 소재 산업도 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도 “일본 정부도 해외에서 리튬이나 니켈, 희토류 등 광산을 개발하거나 자국에서 생산하면 50%까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국회와 정부 측 인사들도 K-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한 입법과 정부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성환 의원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한국형 IRA’로 불리는 탄소중립산업육성법을 발의했다고 언급했다.
이용필 산업통상자원부 첨단산업정책관도 자원순환과 공급망 안정화를 목표로 출범한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언급하면서 “유럽의 CRMA가 핵심 광물 재활용을 의무화해 미국 IRA가 중국의 배터리 소재 시장 확장을 억지할 가능성을 열어 둔 데 주목한다"고 말했다.
정무경 고려아연 지속가능경영위원장은 “2차 배터리 소재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핵심 광물 자원 확보는 국가 전략과 직결되는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