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김진태 기자] 높은 이자율과 공급망 문제 등 지난해 어려움을 겪었던 자동차업계가 올해도 기시밭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겪었던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은 데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영향이 본격화된다는 시각에서다. 이에 정부는 대미 외교 총력전에 나서는 등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각 기업들은 미국 내 전기차 전용 공장을 설립하거나 설립 예정일을 앞당기는 모양새다. 다가오는 IRA 파고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고금리 기조에 반도체 수급난까지…자동차업계 어려움 지속=올해 자동차업계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고금리 기조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계속되면서 이자 부담이 커지는 만큼 판매 부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자 부담에 계약을 포기한 사례는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완성차 5개사의 할부 금리는 통상 5~6%대다. 지난해 초 3~4%대이던 것과 비교하면 소폭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도체 공급난이 올해에도 계속된다는 전망도 자동차업계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전세계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내년말까지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에서다. 세계 주요 자동차 반도체 업체인 미국 온세미 최고경영자(CEO) 하산 엘-쿠리는 자사의 실리콘카바이드반도체(SiC)가 최소 내년말까지 ‘매진’된 상태라고 말했다. SiC는 첨단 파워반도체로 주로 전기차에 쓰인다. 올해에도 반도체 수급난이 계속될 것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엘-쿠리 CEO는 “내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내년에는 매 분기, 매월 고객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설비 확장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자동차 반도체 업체 인피니온의 호켄 하네벡 CEO도 지난해 뮌헨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자동차 반도체 공급과 관련해 온세미와 비슷한 경고를 했다. 하네벡 CEO는 “상당히 긴 기간 반도체 부족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IRA 영향 본격화…현지 전기차 공장 일정 앞당기는 등 IRA 대응 총력=지난해 7월 발효된 IRA의 영향력이 본격화된다는 점도 문제다. 올해 1일부터 시행된 IRA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선 북미에서 최종적으로 조립된 친환경자동차에 대해 미국이 세액공제를 적용한다.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세액 공제까지 가능하다.
세부 조건에서는 조립한 부품의 50% 이상 사용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3750달러를 지원한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 광물의 40% 이상을 사용한 배터리를 장착하면 3750달러를 지원한다. 그동안 배터리부품 조달 비율이 조건에 맞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 만큼 테슬라, GM 등도 공제 혜택을 최대치로 받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최근 미국 재무부가 IRA의 ‘핵심광물 및 배터리 부품 조건’에 대한 세부지침 공지를 3개월 미룬 만큼 현지 기업에게는 혜택이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 1일부터 테슬라와 GM에 적용됐던 누적 20만대 판매 규제가 폐지되는 점 역시 반영된 결과다. 이와 달리 현대차·기아는 법안대로라면 혜택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이 돼야 한다는 점이 전제 조건이 된다”며 “결국 광물이나 배터리 조달비율이 유예되면서 현지 기업은 공제 혜택을 최대 규모로 적용받게 되고 현대차·기아는 그 반대가 된다”고 말했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들어서는 전기차 전용 공장의 완공 시점을 당초 오는 2025년 하반기에서 상반기로 6개월 앞당기는 등 IRA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미국 재무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IRA는 ‘FTA(자유무역협정) 정신 위배’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과 FTA 체결국인 한국에서 조립되는 전기차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한미 FTA 내용과 정신 모두에 위배된다”며 “법안 발효 이전에 미국 전기차 공장 건설에 대해 구속력 있는 약속을 한 법인에서 제조한 전기차는 북미 조립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유예기간을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동화 전환을 준비 중인 쌍용차에게도 IRA는 고민거리다. 쌍용차가 전기차를 생산한다고 해도 미국에 생산기지가 없기 때문에 현지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르노코리아와 한국GM은 아직 글로벌 본사로부터 전기차 생산 배정을 받지 못했다. IRA 시행으로 인해 한국공장에 전기차를 배정받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업계 한 전문가는 “지속적인 공급망 문제와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장이 조심스럽게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IRA 대응에 따라 기업의 희비가 나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