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권지현 기자] 국내 4대 시중은행이 '고환율 효과'를 누리면서 3분기 해외사업환산손익에서 올해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해외사업환산손익'은 은행이 지점, 사업소 등 해외사업장의 자산과 부채·자본, 수익과 비용을 현지 통화에서 원화로 환산할 때 발생하는 이익과 손실을 말한다. 해외사업장의 자산·부채, 자본, 수익·비용 등을 원화로 환산할 때 각각 다른 환율을 적용하는 문제로 발생하는 대차 차이를 맞추기 위한 항목이다.
해외사업환산손익은 당기순이익엔 반영되지 않지만, 자본 항목에 직접 반영돼 향후 당기순이익으로 재분류될 수 있다. 은행이 해외 법인의 철수를 결정하는 등 청산 절차를 밟게 되면 해외사업환산손익은 해당 기간의 영업외손익으로 처리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올해 9월 말 기준 해외사업환산손익은 1584억2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작년 9월 말 576억2000만원의 손실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1년 만에 375%(2160억4000만원) 급증한 것이다.
3분기 기준 4대 은행이 해외사업환산손익에서 모두 이익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흑자 규모도 '역대급'이다. 그간 이들 은행들은 동남아 등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과정에서 진출 국가의 환율 변동으로 인해 해외산업환산손익에서 늘 손실을 봤다. 2020년 9월 말에도 손실 규모 511억5000만원을 기록하는 등 마이너스(-)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으나 올해 큰 폭으로 이익을 내며 모처럼 웃게 됐다.
![4대 은행 해외사업환산손익 추이(단위: 억원). [자료 금융감독원] ](http://www.fetv.co.kr/data/photos/20221147/art_16691611284146_64fef0.png)
은행별로는 하나은행의 개선세가 가장 가팔랐다. 하나은행의 올 9월 말 해외사업환산이익은 1100억7000만원으로 1년 전(-52억8000만원)보다 무려 22배가량 급증했다. 우리은행이 120억4000만원 손실에서 269억1000만원 이익으로 1년 새 3배 이상 늘었으며, 같은 기간 국민은행은 56억1000만원에서 190억원으로 2.4배 증가했다. 특히 국민은행은 4대 은행 중 유일하게 3년 연속 플러스(+) 이익을 냈다. 신한은행은 작년 9월 말 459억1000만원 손실을 봤으나 올해 24억4000만원을 기록, 배 가까이 개선됐다.
4대 은행이 처음으로 해외사업환산손익에서 큰 폭으로 이익을 본 것은 주요 글로벌 사업지인 동남아 국가의 환율 상승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 국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침체가 악화되면서 화폐가치가 급락했으나 올 들어 경제 상황이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환율이 반등했다.
인도네시아의 환율(원·인도네시아 루피아)은 작년 9월 말까지 8월 한 달을 제외하고 대부분 8.0원을 밑돌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연말부터 8.3원대를 형성한 원·인도네시아 루피아는 지난 8월 19일(9.02원) 9원대를 형성한 이후 최고 9.48원까지 치솟으며 평균 9.2원 수준을 유지했다. 인도네시아는 4대 은행이 모두 현지 법인을 세우고 순익 증대를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표적인 해외 진출 국가다.
또 다른 주요 진출지인 베트남도 상황이 비슷하다. 베트남 환율(원·베트남 동)은 작년 1~9월 100동 당 최고 5.21원을 기록하는 등 내내 5.0원을 하회했다. 하지만 올해는 1월 3일 5.22원으로 장을 여는 등 줄곧 5.0원을 넘어서더니 지난 9월에는 최고 6.07원까지 뛰었다. 신한·우리은행은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으며, 국민은행은 하노이와 호치민 두 곳에 해외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동남아 지역에 비해 사업 규모가 크진 않지만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까지 급등한 점도 4대 은행이 모두 진출해 있는 미국 사업장의 환산손익이 개선되는 데 영향을 줬다.
최근 원·인도네시아 루피아와 원·베트남 동이 각각 8원대, 5원대 후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어 대형 시중은행의 해외사업환산손익은 당분간 개선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이들 은행들이 그간 동남아 지역에 뿌려 놓은 '씨앗'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시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도네시아에 부코핀은행을 두고 있는 국민은행은 지난 5월 인도네시아 국영은행(BNI)과 차관단 대출 주선, 외환·수출입금융, 현지 자금 조달 등 신사업을 함께 해나가기로 한 데 이어 지난달 약 8000억원 규모로 부코핀은행 증자에 참여했다. 신한은행은 올 8월 베트남에서 매출채권 담보대출과 디지털 컨슈머론을 출시하는 등 영업력을 확장했으며, 같은 시기 우리은행도 베트남 출장소를 추가로 출점해 총 17개 영업망을 둬 베트남 전역에 네트워크를 두게 됐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해외사업환산손익의 경우 당기순이익에 포함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덜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매 분기 많게는 수백억원 이상 마이너스가 발생해 현지법인 자산 규모에 미치는 영향이 적이 않다"며 "특히 동남아는 주력 글로벌 사업지이므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액 증감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