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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돈 처음 봐요"...다시 문 연 '한국금융사박물관' 가보니

신한은행, 1997년 국내 첫 금융사 박물관 선봬...1년간 리모델링 후 재개관
고대~현재 금융이야기 생생히 담아...AR·VR기기 통한 다양한 체험 기회도

 

[FETV=권지현 기자] "학교에서 배운 옛날 돈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고 재밌어요"

 

서울 광화문역 6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한 건물. 옛 건축 양식인 듯 현대식인 듯한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물 3층 입구에 들어서자 '1등으로 도착했다'는 기쁨도 잠시, 바로 뒤에서 엄마 손을 꽉 잡은 두 어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한은행이 25년 전 국내 처음으로 선보인 금융사 박물관 이야기다.

 

신한은행이 1년간 새 단장을 거쳐 지난달 '한국금융사박물관'의 문을 다시 열었다. 지난 18일 기자가 방문해 직접 느낀 총평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구성이 얼마나 알차던지 큰 규모가 아니었음에도 박물관 개관 시간인 오전 10시 정각에 도착해 꼬박 두 시간을 '홀린 듯이' 둘러봤다. 

 

입장 초반부터 궁금해졌다. 사실 은행이 박물관을 보유한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시중은행만 해도 우리은행이 은행사박물관을 갖고 있으며, 지방은행 중에서는 광주은행이 금융박물관, 부산은행이 금융역사관을 개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한은행의 금융사 박물관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날 만난 김다은 한국금융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에 대해 "한국 금융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리뉴얼을 하며 화폐와 금융 역사에 대한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어린이 관람객을 배려한 체험형 전시 등이 그 예"라고도 덧붙였다. 기존 평면적인 관람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실제 이번 박물관은 한국 금융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많은 발전을 이뤄냈듯, 그간 쌓인 여러 피드백을 반영해 역사 박물관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을 꾹꾹 눌러 담은 모습이다. 한국금융사박물관은 신한은행 광화문점 건물 3~4층에 위치한다. 은행이 자리 잡은 건물이지만 외관부터 박물관스러워 찾는 데 어려움은 없다. 외형은 1897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은행 한성은행의 모습을 본떴다.

 

3층은 전통시대1(고대~조선 전기), 전통시대2(조선 후기~개항 이전), 근대기~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로 구성했으며, 4층은 금융생활 체험관으로서 한국금융 발전사, 금융생활 시간여행, 금융 포토히스토리, 기획전시실, 보이는 수장고로 조성했다.

 

3층에 들어서자마자 디지털 화면이 눈길을 끌었다. 고대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화폐의 변천 과정을 스토리와 함께 4개의 영상으로 담았다. 입구에서 마주했던 두 어린이들은 박물관을 본격적으로 관람하기도 전에 이 부분에서 '지고' 말았다. 영상에서 조선 전기의 화폐 '상평통보'가 나오자 "전에 유치원에서 배웠는데 이렇게 생겼구나"하는 감탄사가 들렸다.

 

두 어린이의 어머니 A씨는 "인터넷에서 박물관 후기 블로그를 보고 오게 됐다"며 "방학을 맞은 두 딸이 갈만한 마땅한 곳을 찾고 있었는데, 와서 다양한 볼거리들을 직접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상평통보 실물은 영상 코너를 바로 지나면 볼 수 있다. 상평통보 '앞뒤' 전시를 보자 너무나 생생한 유물에 기자도 조금 전 마주친 두 학생처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상평통보'는 1633년 최초 유통됐으며, 1678년 이후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유통돼 조선 말기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통용됐다.

 

김 학예사는 "통상 동전과 금속 전시물의 경우 단면만 전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앞뒤 양면을 전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다시 궁금해졌다. 김 학예사가 꼽은 금융사 박물관 최고의 '히트작'은 무엇일까. '국채보상운동 유물들'이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대구에서 발단된 주권수호운동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원을 갚아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벌인 경제 자립 운동이다.

 

 

한국금융사박물관이 보유한 국채보상운동 유물들은 그 의의를 인정받아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당시 운동 취지문을 보며, 민간 박물관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게 됐다는 생각에 '감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4층은 3층과 확연히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3층이 '손주의 눈높이에 맞춘, 할머니의 차분한 옛 금융 이야기'라면 4층은 '뜨거운 경제발전 시대를 보낸, 큰 이모뻘의 컬러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신한은행은 한국금융사박물관을 재개관하며 신한은행 태동기인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은행 모습을 제대로 시현했다. "예전 행원들이 지점에서 입던 동복과 하복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옷감 재질까지 세심하게 신경썼다"던 김 학예사의 귀띔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야간금고와 동전교환 카트기, 신한은행의 국내 첫 바로바로코너 등은 어른들에게 추억을, 통장과 카드, 수표와 주권 등은 좀처럼 은행에 갈 일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한다. 체험 부스도 마련돼 있다. 기자는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통장으로 옛 현금입출금기에서 통장 정리를 통해 100만원을 얻은 뒤, 다시 5만원을 인출했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방문한 B씨는 "신한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직원 게시판을 통해 금융사 박물관 재개관 소식을 알게 됐다"며 "방학 기간이라 자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방문했는데, 금융에 집중된 볼거리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박물관 5층은 덤이다. '재일한국인기념관'이 자리한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고 공헌했던 재일 동포들의 삶과 활약상을 각종 기록과 영상물, AR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신한은행 창립자인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의 일대기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나 볼 수 있다.

 

한국금융사박물관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료는 없다. 이달 27일까지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과거 금융거래 생활상 등이 담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