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유길연 기자] KB금융지주가 주요 금융지주 중 새해 처음으로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결정했다. KB금융을 시작으로 주요 금융지주들은 올해도 적극적으로 자본확충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매우 길고, 채권처럼 매년 일정한 이자나 배당을 주는 금융상품을 말한다.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가졌다고 해서 하이브리드 증권, 코코 본드, 영구채로도 불린다. 신종자본증권은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계산 시 기본자본으로 잡혀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들의 자기자본 확충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최근 41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결정했다. 확보한 자금은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최종 발행규모와 금리는 추후 수요예측을 거쳐 확정된다. 이번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금융지주의 손실흡수능력을 측정하는 BIS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다. 현재 KB금융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총자본비율, 기본자본비율은 각각 14.65%, 13.63%다. 위험가중자산 규모가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아래 4100억원이 자금이 유입되면 총자본·기본자본비율 모두 0.15%포인트(p)씩 상승하게 된다.
KB금융은 이번 발행으로 BIS비율 외에 이중레버리지 비율도 소폭 개선된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의 무분별한 외형확장을 막기 위해 이중레버리지 상한선을 130%로 정하고 있다. KB금융은 지난해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하면서 작년 9월 말 기준 이중레버리지 비율(129.04%)이 상한선에 근접했다. 4100억원이 들어오게 되면 이중레버리지 비율은 126.52%로 크게 내려간다.
신한, 하나, 우리 등 다른 금융지주들도 작년에 이어 올해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4대 금융지주가 작년 한 해 동안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7조9600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약 21%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핵심 사업인 은행의 대출자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본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다. 인수·합병(M&A)을 활발히 진행한 점도 신종자본증권 발행 증대의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자본확충이 필요한 상황에서 저금리 기조와 시중에 풀린 풍부한 자금은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있어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금융지주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금리는 1년 전에 비해 0.15%포인트 정도 낮게 결정됐다. 금융지주는 유리한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신종자본증권 발행 규모를 크게 늘렸고, 그 결과 큰 폭의 BIS비율 개선에 성공했다.
이런 흐름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은행의 대출 자산은 올해 ‘속도조절’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M&A의 경우 올해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금융은 올해 증권사 인수를 비롯해 M&A로 비은행부문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신한금융의 손해보험사 인수설도 돌고 있다..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있어 유리한 조건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새해 주요 은행들이 공모채를 역대급으로 낮은 금리로 발행하는 것이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한다. 하나은행은 5억 유로(6682억원) 규모의 외화채권을 시중은행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연 –0.170%)로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우리은행이 최근 발행한 5억 5000만달러(약 6000억원) 규모의 외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선순위채권도 금리가 0.75%로 결정됐다. 이는 국내 시중은행 달러화 벤치마크 채권 중 역대 최저금리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이후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주요 금융지주가 ESG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늘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그린 뉴딜과 친환경 에너지 사업 정책 추진을 예고하면서 ESG 투자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KB금융은 작년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원화 ESG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바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국내 금융지주들의 신용도가 높은 점과 함께 최근 시중에 풀린 유동성 규모가 큰 점, 그리고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경향은 올해도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