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TV=유길연 기자] 한국은행의 0.5% 기준금리 인하로 사상 첫 ’제로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4대 금융그룹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최대 계열사인 은행의 수익성 하락이 예상되는 가운데 올해 금융그룹의 실적은 저금리 기조 속에서도 지난해 최대 순익을 거둔 증권사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6일 임시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75%로 0.50%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사상 최초로 0%대 기준금리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제로금리로 금융그룹의 핵심인 은행의 수익성 하락이 점쳐지고 있다. 금융그룹의 전체 순익 가운데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65%에서 많게는 90%가 넘는다. 은행의 최대 수익원은 이자자산으로 은행의 수익성 하락은 곧바로 금융그룹 전체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은행은 이미 작년 한 해 동안에도 저금리로 인한 수익성 하락에 직면했다. 작년 4대 시중은행의 순이자마진율(NIM)의 단순 평균치는 1.54%로 1년 전(1.60%)에 비해 0.06%포인트 하락했다. NIM은 이자자산에 대해 얼마만큼 이익을 거뒀나를 측적하는 것으로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다. 올해 0%대 기준금리로 인해 은행의 NIM의 추가적인 하락이 예상된다.
보험사들도 올해 가시밭길이 펼쳐질 전망이다. 작년 보험업계는 저금리로 불황이 이어졌다. 특히 생명보험사들은 과거에 팔아놓은 고금리 확정형 상품 때문에 '이차역마진' 부담이 매년 커지고 있다. 이차역마진은 보험 가입 고객에게 보장한 보험금 이자율보다 보험사 운용 수익률이 낮아 보는 생기는 손해다. 이에 삼성·한화생명 등 주요 생보사들의 순익은 곤두박질쳤다.
금융그룹 내 생보사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오렌지라이프와 신한생명의 작년 순익은 1년 전에 비해 각각 12.8%, 5.5%로 줄었다. 두 생보사는 신한금융의 전체 순익 중 8%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금융그룹 가운데 입지가 큰 보험사들이다. KB생명과 하나생명은 순익이 소폭 늘었지만 규모가 작고 그룹 내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 이 밖에 금융그룹 유일한 손해보험사인 KB손해보험도 손해율이 급증 등 업황 부진으로 같은 기간 실적이 11% 줄었다.
반면 증권사, 카드사, 캐피털사는 저금리 시대에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편이다. 카드사들은 수수요인하로 인해 수익 감소를 저금리를 통한 자금 조달 비용 감소로 상쇄시킬 수 있다. 또 수신 업무가 없는 캐피털사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금융그룹의 카드·캐피털사의 실적이 일제히 오른 이유다.
특히 증권사들은 작년 최대 실적 기록을 세우면서 가장 큰 성장을 이뤘다. 작년 국내 증권사 56곳의 당기순이익은 4조9104억원으로 전년 대비 17.8% 급증했다. 무엇보다 대형증권사들은 투자금융(IB), 자기매매 등의 부문으로 사업을 확대해 수익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실적을 크게 끌어올렸다. 과거처럼 브로커리지 수수료수익에 치우쳐 증시 변동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는 구조에서 탈피한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사들은 저금리 기조 속에서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확보해 사업을 더 확장했다. 올해도 전망이 밝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작년 말 증권업은 저금리에도 올해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평가했다. 이혁준 나신평 금융평가본부장은 “2019년 미국, 중국, 일본이 모두 10~15%의 지수 상승을 보이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상승장에서 소외됐다”며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이 사업 기회를 제공해 다변화된 수익구조를 바탕으로 이익이 증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주요 금융그룹들의 올해 실적은 증권사 순익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KB증권은 그룹 내에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계열사가 될 전망이다. KB증권은 작년 당기순이익이 1년 전에 비해 44% 급증한 2579억원을 거뒀다. 따라서 KB증권은 KB손보를 제치고 KB금융그룹 내 순익 3위로 뛰어올랐다. 특히 KB금융은 작년 6월 초대형 투자은행에 허락되는 발행어음 사업을 금융당국으로부터 인가받아 올해 실적 증대가 더욱 기대된다.
하나금융투자도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작년 하나금투는 IB부문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1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2803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했다. 하나금투가 사실상 그룹 비은행부문 경쟁력 향상을 이끈 셈이다. 또 하나금투는 지난달 유상증자도 하면서 자기자본 4조원의 초대형 투자은행으로 올라설 준비를 마쳤다. 올해 실적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반면 신한금융은 신한금융투자가 아픈 손가락이다. 작년 신한금투의 당기순익은 증권업 호황에도 불구하고 2208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2.1% 줄었다. 여기에 작년 말부터 문제가된 ‘라임펀드 환매연기 사태’는 신한금투의 올해 사업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당초 신한금투는 작년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4조원을 넘기면서 올해 초대형 투자은행 인가를 통해 실적 반등을 노리려 했다. 하지만 라임펀드에 신한금투가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신한금투의 금융당국 인가도 불투명해졌다. 또 라임펀드 사태로 신한금투가 부담해야할 배상금과 과징금도 큰 부담이다.
우리금융그룹은 증권사 인수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 됐다. 작년 내내 우리금융 증권사 인수설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된 바는 없다. 무엇보다 증권업 호황으로 시장에 나오는 증권사 매물이 없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