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TV=유길연 기자] 새해 초부터부터 인수합병(M&A) 등 금융그룹간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그 동안 M&A에 소극적이었던 하나금융그룹이 더케이손해보험 인수 추진으로 금융그룹의 몸집 불리기도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하지만 금융그룹간 온도차가 느껴진다. KB금융그룹과 하나금융이 연 초부터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반면 신한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 NH농협금융그룹은 재무적인 부담 등으로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더케이손보의 지분 70%를 인수하기로 의결했다. 인수가는 1000억원 내외로 전해진다. 하나금융은 가격 등 인수 조건을 더케이손보 측에 전달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하나금융이 8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M&A에 나선 이유는 비은행부문 강화를 위해서다. 그 동안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금융사 인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금융그룹 간의 경쟁에서 비은행부문 강화가 핵심 요소로 떠오르자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관측된다. 하나금융은 은행, 증권, 카드, 생명보험, 저축은행 등의 계열사를 갖고 있지만 손보사는 없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 2014년에 하나금융 전체 이익 가운데 비은행 계열사 비중을 오는 2025년까지 3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하나금융의 올 3분기 비은행계열사의 순익 비중은 17%에 머물러있다. 하나금융투자의 순익이 많이 늘어 비은행부문 실적이 개선됐지만 신한금융(34%), KB금융(30%)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하나금융은 더케이손보를 인수해 손보업 등록허가를 취득해 비은행부문 이익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KB금융그룹도 새해부터 비은행부문 강화를 위해 M&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업계는 KB금융이 푸르덴셜생명 예비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KB금융이 푸르덴셜생명 인수 전에 뛰어들 것이란 전망은 작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차원에서 다양한 인수·합병(M&A)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할 것"이라 밝힌 것도 인수 참가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KB금융은 신한금융그룹과 1위 다툼을 하기 위해선 비은행부문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KB금융의 작년 3분기 비은행부문 계열사 당기순이익 비중은 30%로 신한금융(34%)에 비해 4%포인트 낮았다. 비은행부문 경쟁력이 신한금융에 밀리면서 전체 순익 2위로 밀려난 것으로 분석된다.
KB금융은 특히 생보사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 KB생명은 규모가 작고 업계 위상이 낮은 탓에 M&A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신한금융이 작년부터 오렌지라이프 지분 59.15%를 인수한 효과가 반영되면서 작년 3분기 누적 비이자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37% 급증했다.
인수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실탄확보도 착실히 이뤄졌다. KB금융은 푸르덴셜생명을 2조~2조5000억에 인수하길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 보는 푸르덴셜생명 인수가와 비슷하다. 이를 위해 KB금융은 자사주 매입을 꾸준히 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KB금융은 지난 2016년부터 총 1조30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물론 자사주 매입은 이중레버리지비율(자회사 출자총액/지주사 자기자본) 수치를 높여 출자여력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지주회사의 재무안정성을 감시하기 위해 지난 2009년 도입된 계량지표다. 금융당국은 과도한 차입을 통한 외형확장을 막기 위해 이중레버리지비율을 130% 아래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KB금융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작년 9월 말 기준 126%로 상안선인 130%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인수 기업을 100% 자회사로 인수하는 방식인 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시행할 때는 자사주를 인수에 활용할 수 있다. 현재 KB금융이 추가 출자여력은 9000억원 가량이다. 자사주 활용 및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을 활용하면 2조 5000억원 넘게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신한금융은 인수합병에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금융은 출자여력이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떨어지는 점이 부담이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신한금융의 이중레버리지 비율은 128.58%로 4대 금융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당국의 권고치에 불과 1.5%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작년 오렌지라이프 인수, 신한금융투자 유상증자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 결과로 풀이된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M&A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신한금융이 인수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당분간 지주사 자기자본을 꾸준히 늘려 출자여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갈길이 바쁜 우리금융도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초 재출범한 우리금융은 우리은행 외에는 아직 이렇다할 실적을 내는 계열사가 없다. 금융그룹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증권, 보험 부문 계열사를 확보해야 한다.
출자여력은 충분한 편이다. 우리금융은 KB금융과 달리 이중레버리지 비율은 작년 9월 기준 96.61% 수준이다. 출자여력은 5조원대로 파악된다. 또 작년 11월 25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여유를 늘렸다.
다만 자본력 자체가 미약한 것이 문제다. 우리금융의 작년 3분기 기준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8.45%로 타 금융지주(KB금융 14.4%, 하나금융 12.3%, 신한금융 11.4%)에 비해 낮다. 인수를 위해 차입을 늘리면 자본적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리금융은 당초 예상과 달리 푸르덴셜생명 인수 예비입찰 참여를 포기했다. 자본력이 크지 않고 또 최근 주가 하락,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리스크 등으로 2조원 가량 규모의 기업 인수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증권사의 경우 인수 매물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금융의 고심이 깊어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