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고 이병철 삼성전자 선대회장,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사진=삼성전자]](http://www.fetv.co.kr/data/photos/20191144/art_15725721232887_8c786d.jpg)
[FETV=조성호 기자] 삼성전자가 다음 달 1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직원 36명에 불과했던 삼성전자는 현재 10만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반도체,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우뚝섰다. 시가총액 300조원, 브랜드가치는 611억달러(약 71조원)에 달할 정도다.
삼성전자가 50년간 이처럼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선언’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도쿄선언’과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다. 두 회장의 사운을 건 결단력과 이를 실행에 옮긴 직원들의 도전정신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1969년 1월 13일 자본금 3억3000만원과 직원 36명으로 ‘삼성전자공업(주)’를 설립했다. 삼성전자공업의 첫 해 매출 3700만원에 불과했다.
이병철, 전환점 마련한 ‘도쿄 선언’…“반도체, 내 마지막 사업”
삼성전자가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1983년 2월 이병철 선대회장의 ‘도쿄 선언’이었다. 흑백TV와 냉장고, 컬러TV 등 가전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던 회사에서 ‘반도체’를 자사의 주력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며 사실상 ‘제2의 창업’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을 때만 해도 이병철 선대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인수에 적극 나선 것도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 회장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당시 세계 반도체 기술 양대 산맥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기술 문단속’이 심해 제품 구입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체 기술 개발은 엄두조차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더구나 두 차례 오일파동으로 세계 경기가 바닥을 치던 때에 반도체 생산을 위한 대규모 설비 투자에 나서는 것도 커다란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반도체 인수에 적극 나선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끈질긴 설득에 이병철 선대회장 역시 반도체에 확신을 갖게 되고 마침내 1983년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은 나의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라고 밝힌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그 해 12월 64K D램 자체 개발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일본이 6년에 걸쳐 개발한 기술을 삼성전자는 단 6개월만에 훨씬 안정적인 수준으로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공업은 이후 1988년 11월 1일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해 삼성전자를 출범시켰다. 창립기념일도 이날로 바꿨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하고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지 10년만에 이뤄낸 결실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철저한 준비와 이건희 회장의 ‘뚝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삼성전자는 이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27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은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 중 76%를 차지할 정도로 그룹의 핵심 사업이다. 지난해 58조89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만 44조57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건희, 프랑크프루트 ‘신경영’ 선언…새로운 도약 발판 마련
이병철 선대회장이 모험을 무릅쓰고 반도체 사업 진출이라는 결단을 내리며 삼성전자의 사업 체질을 바꿨다면 이건희 회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기업 체질을 바꾸는 혁신을 단행했다.
1987년 이병철 선대회장의 별세로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은 당시 취임식에서 “삼성전자를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라”며 고강도 혁신을 주문했다. 경영진 200여명을 긴급 소집해 ‘양(量)에서 질(質)로의 질중시 경영’을 주문했다.
국내에서 머무르며 경쟁하기보다는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 글로벌 기업들과의 한판 승부에 나선 것이다. ‘신경영’ 선언은 삼성전자가 새롭게 도약하며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듬해인 1994년 첫 아날로그 휴대폰 ‘애니콜’을 출시했다. 당시 모토로라, 노키아 등 해외 휴대전화가 주류를 이뤘던 국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애니콜 신화’를 써 내려갔다. 이는 이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애플 ‘아이폰’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기술을 마련한 토대가 됐다.
삼성전자는 TV사업에서도 2006년 일본 소니를 제치고 글로벌 1위에 오르는 등 전자 업계 강자로 불리는 글로벌 업체들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삼성전자는 현재 반도체와 TV 뿐만 아니라 냉장고, 스마트폰, 중소형 OLED 패널, 스마트 사이니지 등 12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세계 경제 불황이 가중되던 2010년 삼성전자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라고 임직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이 같은 결단은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 41조원이던 삼성전자의 매출액을 243조7700억원(2018년 기준)까지 성장시키고 영업이익 역시 같은 기간 4900억원에서 무려 120배 이상 증가하는 데 발판이 된 셈이다.

이재용, 신산업 발굴‧육성에 대규모 투자…‘미래 50년’ 준비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초일류’에 나섰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초격차’를 주장하며 앞으로의 50년을 위해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한화그룹에 석유화학 및 방산부분을, 2015년에는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와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롯데그룹에 매각하며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이 살아남으려면 비주력 계열사를 정리하고 열정과 자신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며 “제대로 경영할 수 없는 회사를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은 경영인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처럼 비주력 사업 개편에 나서는 동시에 신사업 육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AI(인공지능)과 5G(5세대) 이동통신, 차세대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등에 적극 투자하며 미래 성장 사업 발굴에 힘쓰고 있다.
2016년에는 국내 인수합병 최대 금액인 9조원을 들여 미국 자동차 전장 기업 ‘하만’을 인수했다. 지난해 초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은 이후 투자 규모를 더욱 늘리며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미래 신사업에 3년간 180조원 투자 및 4만명 직접고용, 올해 4월에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의 글로벌 1위 달성을 위한 ‘반도체 비전 2030’ 계획을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발표했다.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하고 1만5000명의 전문인력도 채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지난 10일에는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에 2025년까지 13조1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디스플레이 기술 방향을 LCD(액정표시장치)에서 ‘QD(퀀텀닷‧양자점물질) 디스플레이로 전환해 대형 디스플레이 산업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9월 삼성리서치를 찾은 자리에서 “불확실성이 클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흔들림 없이 하자. 오늘의 삼성은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미래였다”며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끊임없이 도전해 꼭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