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산업과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정치적 혼돈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부흥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FETV는 업권별 현안과 과제를 점검하고 차기 정부에 바라는 규제 완화 요구 등을 들어보고자 한다. |
[FETV=김주영 기자] 제약업계를 대변하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새 정부에게 바라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약가 제도 개편을 제시했다. 약값이 정해진 뒤에도 사용량, 유사약 등재, 재평가 등의 사유로 여러 차례 인하되는 등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약가 협상을 위해 식약처 허가부터 심사평가원 검토, 건보공단 협상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도 업체가 겪고 있는 고충이라고 설명했다.
15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약가 정책이 전반적으로 ‘약가 인하’ 중심 기조가 강하며 여기에 각종 제도가 중첩돼 기업으로서는 예측 가능한 경영 환경을 조성하기 어렵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번 약가가 책정된 이후에도 다양한 기준에 따라 인하 요인이 반복 작동할 수 있어 장기적인 투자나 연구개발(R&D) 계획 수립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사진 게티이미지]](http://www.fetv.co.kr/data/photos/20250520/art_1747227832635_8517f4.jpg)
실제로 2025년 3월 개정된 보건복지부 고시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에는 약가 산정과 인하 요인이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고시 별표1 ‘약제 상한금액의 산정, 조정 및 가산 기준’ 제2호 가목은 동일 성분과 제형의 약제가 여러 개 등재돼 있을 경우 신규 약제의 상한금액을 기존 최고가의 72.25% 수준으로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해진 가격도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후 제3호 가목(타사 동일제제 등재 시 조정)이나 약제비 적정성 재평가 등의 절차를 통해 다시 한 번 가격이 인하될 수 있는 구조다.
이처럼 각각의 제도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약제에 중첩 적용될 수 있고 이로 인해 기업 입장에서는 약가 변동성이 커진 만큼 대책을 수립하기도 힘들다는 주장이다.
제약업계는 실제 약가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고 생산 설비나 R&D 등 중장기 전략을 유연하게 펼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2025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인하율을 조정한 부칙 제3조에 따라 사용량 약가 연동제 대상 약제의 상한금액 인하율을 12.5%로 제한했지만 제도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필수의약품에 대해서도 동일한 경제성 기준이 적용되면서 수익성이 낮은 품목에 대한 기업의 생산 유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필수약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의 가격을 보장받지 못하면 생산을 중단하는 경우도 생기고 이는 결국 공급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개정 고시에서는 해당 제도에 따라 원가보전 기준을 일부 조정했고 기존 고시에 따라 신청돼 평가가 완료되지 않았거나 고시되지 않은 약제부터 새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변화로 이어지기엔 부족하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일부에선 퇴장방지의약품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지니고 있다. 약가가 낮고 보전 기준도 충분하지 않아 약을 계속 생산하는 회사들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퇴방약의 공급이 끊긴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2021년부터 2024년 3월까지 총 79개 품목이 공급 중단을 신고했으며 이 가운데 22개는 아예 생산이 완전히 중단됐다.
약가 등재 절차 역시 간단하지 않다. 하나의 약제를 건강보험 급여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식약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안전성·유효성 평가,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의 심의, 보건복지부 협의, 경우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까지 단계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평가기관 간 역할이 중첩돼 절차적 비효율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최근 개정을 통해 일부 조항이 보완되긴 했지만 업계에서는 실질적 체감도는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약가 제도 전반이 보다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약가 제도가 중복적이고 분절적이라는 점에서 보다 통합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